방 안은 조용했다. 창문은 반쯤 닫혀 있었고, 바람이 거의 들지 않는 탓에 공기가 조금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연서하는 침상에 기대 앉아 있었다.
젖은 머리는 이미 말랐지만, 몸 안에 남아 있는 한기는 쉽게 가시지 않았다. 손끝은 여전히 차가웠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목이 따끔하게 걸렸다.
“…괜히 무리했나.”
작게 중얼거렸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다. 그 순간에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고,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을 뿐이었다. 그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대가가 지금 이렇게 돌아온 것뿐이었다.
기침이 한 번, 길게 이어졌다. 연서하는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다.
“…이건 좀 오래 가겠네.”
문이 두 번, 짧게 두드려졌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들어온 건 백운경이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아무 말 없이 연서하를 훑어봤다. 단순히 상태를 보는 시선이 아니라, 얼마나 버티고 있는지까지 확인하는 눈이었다.
“…무모하셨습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이 떨어졌다. 연서하는 피식 웃었다.
“살아났잖아.”
담담한 대답이었다. 백운경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
“…그건 그렇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연서하가 먼저 말을 꺼냈다.
“누군데.”
백운경은 짧게 답했다.
“…정여주 소저 측 시녀입니다.”
예상했던 이름이었다. 연서하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시선을 내렸다.
“일부러 밀어 넣은 건 아닌 것 같나.”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그 말은 곧,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연서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말했다.
“우연이면 좋겠네.”
그녀의 말은 가벼웠지만, 의미는 그렇지 않았다. 백운경이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말을 이었다.
“…왕야께서 의관을 보내셨습니다.”
연서하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멈췄다.
“…나한테?”
“예. 직접 명하신 겁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무게는 가볍지 않았다. 연서하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형식이겠지.”
작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스스로를 납득시키기 위한 것에 가까웠다.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그날 밤.
왕부 안채는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불빛이 줄어들고, 사람들의 움직임도 거의 사라진 시간. 연서하는 열이 오른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숨이 고르지 않았다.
가끔씩 얕은 기침이 섞였고, 미간이 조금씩 찌푸려졌다. 이마에는 열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방 안에,
누군가가 들어와 있었다. 문이 열리는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발걸음도 조용했다. 소율한이었다.
그는 한동안 문가에 서 있었다. 들어올 생각이 없었던 사람처럼, 그저 확인만 하고 돌아가려는 사람처럼. 하지만—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침상 가까이까지. 연서하의 모습을 내려다봤다.
물에 젖었던 흔적은 이미 사라졌지만, 대신 열에 달아오른 얼굴이 남아 있었다. 숨이 가쁘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들렸다.
“…이런 상태로 버틴 건가.”
낮게 중얼거렸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였다. 그는 손을 뻗을 듯 말 듯, 잠깐 멈췄다. 그리고 결국—
이마 위에 살짝 손을 얹었다. 뜨거웠다. 생각보다. 그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 순간, 연서하의 숨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깨어난 건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모르는 상태도 아니었다.
그 경계 어딘가. 소율한은 바로 손을 거두지 않았다. 조금 더, 잠깐 더 머물렀다.
“…무모한 짓을 한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목소리는 전혀 같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손을 거두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그녀를 내려다봤다. 조용히. 길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뒤, 돌아섰다. 나갈 때도 소리는 거의 없었다. 아무도 모르게— 다녀간 것처럼.
다음 날 아침.
왕부 안의 공기는 어제와는 또 다르게 변해 있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조용했지만, 사람들의 시선에는 확실한 변화가 담겨 있었다. 누군가는 더 조심했고, 누군가는 더 눈치를 봤다.
그리고— 연서하는 느꼈다.
“보고 있네.”
보이지 않는 시선이 따라붙고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였다. 그녀는 천천히 걸었다. 몸은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지만,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피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다.
“좋아.”
작게 중얼거렸다.
“다 보게 해.”
그 순간—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날 밤.
왕부 안채의 깊숙한 방 안에서, 정여주는 혼자 앉아 있었다. 촛불 하나만 켜져 있었고, 그 불빛이 미묘하게 흔들리며 벽과 바닥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방 안은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이 오히려 불편했다.
“…이상해.”
작게 중얼거렸다. 오늘의 장면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연못. 물.
그리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던 모습. 그건, 그녀가 알고 있던 연서하의 행동이 아니었다.
“연기…?”
가능성부터 떠올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다. 그 순간의 눈은, 연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계산이 없었다. 득실도 없었다. 그냥— 본능처럼 움직였다.
정여주의 손이 천천히 굳어졌다.
“…말이 안 돼.”
그녀는 소매 안에서 손을 꽉 쥐었다. 예측할 수 없는 상대. 그건, 가장 위험한 종류였다.
문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소저.”
시녀가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정여주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물었다.
“말해.”
“왕야께서… 오늘 왕비마마께 의관을 보내셨다고 합니다.”
정여주의 손이 멈췄다. 완전히.
“직접 명하신 거라고—”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촛불이 크게 흔들렸다. 잠깐,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정여주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그래?”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오히려—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 정도로 신경 쓰였다는 거네.”
혼잣말처럼 낮게 흘러나왔다. 연서하가 물에 뛰어든 일. 그걸 보고— 직접 의관을 보냈다.
그건 단순한 형식이 아니었다. 정여주는 알고 있었다. 그 정도 거리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걸.
“…재밌네.”
하지만 웃음은 오래 가지 않았다. 곧 사라졌다. 그 자리를— 불편한 감정이 대신 채웠다.
가슴 안쪽이 조용히 조여왔다. 짜증과는 다른 감정이었다. 불안. 그리고—
자리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감각. 정여주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걸어갔다. 어둠 속 왕부를 내려다봤다.
조용했다. 너무 조용했다.
“…흐름이 바뀌고 있어.”
낮게 중얼거렸다. 원래라면. 이쯤에서 연서하는 스스로 무너졌어야 했다. 감정적으로 움직이고,
그걸 빌미로 더 몰리고, 결국은—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어야 했다. 그게 익숙한 흐름이었다.
그게 안전한 흐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었다. 정여주의 시선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그럼 바꾸면 되지.”
조용히 말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확실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무너지지 않으면… 무너지게 만들면 되는 거니까.”
그녀는 돌아섰다. 시녀를 불렀다.
“사람 하나 붙여.”
“예?”
“왕비마마 쪽.”
짧게 말했다.
“누구를 만나고, 어디를 가고, 무슨 말을 하는지… 전부 보고하게 해.”
시녀가 잠깐 망설이다가 고개를 숙였다.
“…예, 소저.”
정여주는 다시 창밖을 봤다. 눈이 완전히 식어 있었다.
“이번엔… 실수 안 해.”
그날 오후, 왕부 안의 공기는 겉으로는 평온했지만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사람들의 말은 낮아졌고 시선은 길어졌으며, 보이지 않는 긴장이 천천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그 틈을 파고들듯 소진서가 왕부를 찾았다. 그의 방문은 흠잡을 데 없이 자연스러웠다. 왕명을 전하러 왔다는 명목, 정중한 절차,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태도까지. 그는 먼저 소율한을 만나 필요한 말을 나눴고, 그 다음에서야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왕비마마께서 편찮으시다 들었습니다. 몸을 덥히는 약재를 가져온 것이 있어 직접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거절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의심하기 힘들 정도로. 연서하는 그를 다시 마주했을 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예를 갖췄다. 하지만 시선이 한 번 마주치는 순간, 분명히 느꼈다. 이 남자, 전과 다르다.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다.”
소진서가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거리는 분명히 가까웠다. 필요 이상으로.
“열이 아직 남아 있으신 것 같은데 이렇게 돌아다니셔도 괜찮으신 겁니까.”
연서는 짧게 답했다. “괜찮습니다.”
“괜찮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낮게 말했다. 그리고 시선이 천천히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의도적으로, 시간을 들이듯.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약재를 받았다.
그 장면을 멀지 않은 곳에서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 소율한이었다. 그의 눈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말 한마디 하지 않았지만 공기가 변했다. 소진서가 서 있는 거리, 그 미묘하게 좁은 간격, 그리고 길어진 시선이 전부 눈에 들어왔다.
“…세자.”
소율한이 낮게 불렀다. 소진서가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었다.
“왕야.”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연서의 옆에 선 채로 시선을 맞췄다. 소율한의 눈이 더 깊어졌다.
그날 저녁, 정여주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연서의 옷에 차가 쏟아진 건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한 실수였다. 시녀 하나가 무릎을 꿇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마마!”
하지만 타이밍도, 위치도 너무 정확했다. 연서는 잠깐 멈췄다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아. 갈아입으면 되니까.” 안내받은 방은 안채 깊숙한 곳이었다. 사람의 기척이 거의 없는 곳, 지나치게 조용한 곳. 문이 닫히는 순간 공기가 바뀌었다.
누군가 있었다. 남자였다. 연서의 눈이 순식간에 식었다.
“누구—”
그가 먼저 다가왔다. 연서는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거기서 멈춰.”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연서의 손이 움직였다. 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였다. 망설임 없이 그의 가슴을 향해 찔렀다.
짧은 신음이 터졌고, 피가 번졌다. 연서는 더 보지 않았다. 곧바로 문을 열고 나왔다. 하지만 몸이 이상했다. 숨이 가빠졌고 열이 급하게 올라왔다. 시야가 흐려졌다.
“…차…”
그제야 알았다. 몸이 버티지 못했다. 걸음이 흔들렸다. 정원으로 나왔을 때 더 이상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그녀를 붙잡았다.
강하게, 확실하게.
“…연서하.”
낮고 눌린 목소리였다. 소율한이었다. 연서는 제대로 보지도 못한 채 그의 옷깃을 붙잡았다. 숨이 가빠졌고 말끝이 풀렸다.
“…더워요…”
손이 떨렸지만 놓지 못했다. 소율한의 눈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상황을 파악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단순한 고뿔이 아니라는 것까지.
“누가 손댔지.”
낮게 내뱉었지만 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중요하지 않았다. 연서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그대로 무너지듯 기울었다. 소율한이 바로 끌어안았다. 허리를 잡아 올리고 무게를 전부 받아냈다.
“정신 차려.”
짧게 말했다. 연서는 그의 옷을 더 세게 붙잡았다.
“…도와주세요…”
거의 흘러나오듯 나온 말이었다. 소율한은 그대로 그녀를 안아 올렸다. 한 팔로 등을 받치고 다른 팔로 무릎 뒤를 받친 채, 빠르게 정원을 가로질러 사람의 시선이 닿지 않는 안쪽으로 향했다.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자마자, 방 안의 공기가 바깥과 완전히 끊어졌다.
연서를 침상 위에 내려놓았지만, 그는 바로 떨어지지 않았다. 손이 여전히 그녀를 붙잡고 있었다. 연서는 숨이 고르지 않았다. 열이 더 올라왔고, 손은 여전히 그의 옷을 놓지 못했다.
“…도와주세요…”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했다. 눈이 흐릿한 채로, 분명히 그를 향하고 있었다. 소율한의 움직임이 멈췄다.
손을 떼지 못한 채, 그대로 굳은 듯 서 있었다. 그의 숨이 한 번, 깊게 내려앉았다. 억지로 눌러두던 무언가가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연서의 손이 그의 옷깃을 더 끌어당겼다.
놓지 않았다. 도망칠 틈도 주지 않듯이. 그제야, 소율한의 눈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지금 무슨 상태인지 알고 하는 말이냐.”
낮게 물었다. 하지만 그 질문은 경고에 가까웠다. 연서는 대답 대신,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숨이 섞였다.
열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 순간, 더는 버틸 이유가 사라졌다. 소율한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했다.
“…후회하지 마라.”
그 말은, 더 이상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연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놓지 않았다.
그날 밤, 왕부 안의 공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리고 그것이 두 사람의 첫날밤이었다.
다음 날 아침, 왕부 안채는 유난히 고요했다. 밤새 무언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녀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조심스러웠고, 말소리는 낮았으며,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조차 평소보다 더 억눌려 있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분명히 다른 결이 섞여 있었다. 연서하는 천천히 눈을 떴다.
몸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열은 완전히 내리지 않았고, 밤의 잔열이 아직 남아 있는 듯 온몸이 나른하게 식어 있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어딘가 미묘하게 떨렸고, 손끝에는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잠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천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기억이 돌아왔다. 어제의 일. 정원, 손을 붙잡았던 순간, 그리고… 연서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하…”
작게 숨이 새어나왔다.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선택한 일이었다. 그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게 남아 있었다. 몸에도, 그리고… 마음에도. 문이 조용히 열렸다.
시녀 하나가 들어왔다가, 연서가 깨어 있는 것을 보고 잠깐 놀란 듯 멈췄다.
“마마… 괜찮으십니까?”
연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목소리는 아직 조금 잠겨 있었다. 시녀가 물을 가져오는 동안, 연서는 조용히 숨을 골랐다. 그리고— 느꼈다.
몸 상태가 어제와 다르다는 것을. 단순히 아픈 것이 아니라, 어딘가 기준이 무너진 것 같은 감각.
“왕야께서…”
시녀가 말을 꺼냈다가 잠깐 멈췄다. 연서의 시선이 천천히 올라갔다.
“뭐.”
“…아침 일찍 나가셨습니다.”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충분했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물을 받아 들었다.
손이 아주 미세하게 떨렸다.
“…그래.”
짧게 답했다. 그 이상은 묻지 않았다.
같은 시각.
소율한은 이미 집무실에 서 있었다. 밤을 거의 보내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티는 나지 않았다. 그는 창가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문서도, 붓도 손에 들지 않은 채. 그저— 생각하고 있었다. 연서하.
그 이름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었다. 어제의 표정. 붙잡던 손. 그리고—
놓지 않던 순간까지. 그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선 넘었군.”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후회라는 감정은 없었다. 다만.
이건 분명히 달라진 일이었다. 되돌릴 수 없는 쪽으로. 그는 손을 들어 얼굴을 한번 쓸어내렸다. 그리고 다시 평소의 표정으로 돌아갔다.
완전히.
“들어와.”
짧게 말했다. 문이 열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어제 일.”
소율한의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끝까지 추적해라.”
“예, 왕야.”
“손댄 놈도.”
잠깐 멈췄다.
“…뒤에 있는 것까지.”
그 말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 확실하게.
같은 시각.
정여주의 방. 그녀는 밤을 거의 자지 못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여전히 단정했다.
“소저…”
시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제 일, 실패했습니다.”
정여주의 손이 멈췄다. 완전히.
“…그래?”
짧은 대답. 너무 차분해서 오히려 더 위험했다.
“그럼—”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왕비마마는?”
“…무사하십니다.”
짧은 정적. 그리고— 정여주가 웃었다. 천천히.
“…재밌네.”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안 무너지면…”
그녀의 시선이 조용히 식었다.
“…조금 더 세게 해야겠지.”
그 순간, 왕부 안의 흐름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굴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