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나는 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08화 · 전체 16

칼끝이 향한 방향

글 · 힐링아무

왕부 안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조용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온했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으며, 겉으로 드러나는 질서 역시 흐트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쪽은 전혀 달랐다.

시선이 달라졌고, 말이 끊기지 않았으며, 연서하가 지나가는 순간마다 공기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누군가는 노골적으로 피했고, 누군가는 숨기지도 않고 훑어봤다. 연서하는 그 변화를 전부 느끼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네.”

작게 중얼거리며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완전히 잠잠해진 게 아니었다. 오히려— 더 크게 터지기 직전의 고요였다.

그날 오후, 안채 쪽 연못은 햇빛이 부서지듯 내려앉고 있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빛이 흔들렸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였다. 연서하는 혼자 그 길을 걷고 있었다. 일부러였다. 숨지 않았다.

이럴 때일수록 더 드러내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피하는 순간, 소문은 더 빠르게 몸을 얻는다.

“왕비마마.”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연서하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한 박자 늦게 돌아섰다. 정여주였다. 오늘도 완벽한 모습이었다. 흐트러짐 없는 옷차림, 계산된 거리, 그리고 누구에게나 호감을 주는 표정까지.

“…혼자 나오셨어요?”

부드러운 말투였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의도가 담겨 있었다. 연서하는 짧게 답했다.

“산책 중이에요.”

정여주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요즘 많이 달라지셨어요.”

말은 칭찬처럼 들렸지만, 실제로는 확인이었다. 연서하는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 웃었다.

“그런가요.”

“네. 예전과는 많이 달라 보이세요.”

정여주의 눈이 조금 더 깊어졌다.

“좋은 쪽이라면 다행이겠지만요.”

짧은 정적이 흘렀다. 바람이 지나가며 수면을 흔들었다. 연서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주 씨.”

정여주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네, 마마.”

“사람이 달라지는 게 그렇게 이상한 일인가요. 아니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일인가요.”

말은 부드러웠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정여주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곧 웃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너무 갑작스럽다면 이유가 궁금해질 뿐이죠.”

연서하는 고개를 아주 살짝 기울였다.

“궁금해서요?”

“걱정이 돼서요.”

정여주의 대답은 매끄러웠다. 하지만— 완전히 자연스럽지는 않았다. 연서하는 더 묻지 않았다.

그때였다.

“마마!”

급하게 달려오는 발소리가 공기를 찢듯 다가왔다. 시녀 하나가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고,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무슨 일이야.”

연서하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연못 쪽에… 사람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첨벙. 무언가 물에 빠지는 소리가 또렷하게 울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연못으로 향했다.

수면 위에서 무언가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사람이었다. 순간, 연서하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생각보다 빨랐다.

망설임이 없었다.

“뒤로 물러나!”

짧게 외치며 물가로 달려갔다. 신발이 젖는 것도, 치맛자락이 물에 닿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곧바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순식간에 몸을 휘감았다. 숨이 턱 막히는 감각이 올라왔지만 멈추지 않았다. 손을 뻗었다. 허우적대는 사람의 팔을 붙잡았다. 몸이 생각보다 무거웠다. 힘이 필요했다.

“가만히 있어, 놓지 마.”

숨이 섞인 목소리였다. 그 순간— 강하게 끌어당기는 힘이 더해졌다. 뒤에서 누군가가 팔을 붙잡았다.

“놓지 마라. 그대로 붙잡고 있어.”

낮고 단단한 목소리. 연서하의 시선이 흔들렸다. 소율한이었다. 그는 이미 물가까지 와 있었고, 망설임 없이 물속으로 발을 들인 상태였다. 옷이 젖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그대로 손을 뻗어 둘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물 밖으로 올라오는 순간, 연서하는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 깊숙이 들어왔다. 손이 떨렸다. 몸이 식어 있었다.

하지만 시선은— 그에게 향해 있었다. 소율한. 그 역시 젖어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먼저 연서하를 확인했다.

“무모하게 뛰어드는 버릇이라도 있나.”

짧게 내뱉었지만, 그 안에는 분명히 감정이 실려 있었다.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확인 안 하고 먼저 들어간 건가.”

연서하는 숨을 고르며 답했다.

“…살릴 수 있으니까 들어갔습니다.”

소율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더 말을 잇지 않았다. 대신 잠깐, 아주 짧게— 그녀를 더 오래 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의관 불러라. 지금 당장.”

명령이 떨어지자 주변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몰렸고, 시녀들이 뛰어갔다. 연서하는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손끝이 아직도 떨리고 있었고,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 차가운 감각이 그대로 전해졌다.

그때— 시선이 느껴졌다. 정여주였다. 조금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부드러움도, 계산된 미소도 없었다. 당황. 그리고—

숨기지 못한 흔들림. 연서하는 조용히 시선을 내렸다.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장면이 어떤 의미인지.

같은 시각.

소율한은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연서하에게 향해 있었다. 물에 젖은 채 숨을 고르며 앉아 있는 모습, 아무 계산도 없이 먼저 몸을 던진 행동.

“…제정신은 아니군.”

작게 중얼거렸다. 무모한 행동이었다. 분명히. 그런데—

이상하게 눈을 떼지 못했다. 그는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조금 더 오래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이 여자는—

소문 속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생각했다. …지켜봐야겠다.

0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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