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도를 지나며 연서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조사하겠다. 그 짧은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고 있었다. 단순한 명령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넘기지 않겠다는 뜻이었고, 그 말 하나로 흐름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흐름이 바뀌고 있어…”
작게 중얼거리며 걸음을 늦췄다. 원작이라면 이미 끝났을 시점이었다. 소문은 사실처럼 굳어졌을 것이고, 연서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움직였을 것이며, 그 행동이 다시 빌미가 되어 더 깊이 몰렸을 것이다. 결국은 스스로 무너지듯, 그렇게.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아직은, 버틸 수 있는 지점이었다. 연서하는 잠시 멈춰 섰다. 손끝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지만, 돌아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 길을 선택한 이상, 뒤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번엔… 내가 무너지지 않아.”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날 저녁, 왕부 안은 겉보기에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지만, 안에 흐르는 공기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 시선이 노골적으로 바뀌었고, 누군가는 일부러 피했고, 누군가는 더 대놓고 바라봤다.
연서하는 그 모든 시선을 모른 척 지나갔다. 익숙한 종류의 시선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그 시선에 반응하지 않는 자신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었다.
밤이 깊어질 무렵, 백운경이 다시 찾아왔다. 문을 두 번, 짧게 두드리는 소리.
“들어와.”
문이 열리고 들어온 그의 표정은 아침보다 더 굳어 있었고, 말하기 전 잠깐 숨을 고르는 모습에서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마.”
“말해.”
잠깐의 침묵이 흐른 뒤, 그가 입을 열었다.
“소문 출처, 확인됐습니다.”
연서하는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누구야.”
“…정여주 소저 측 시녀입니다.”
예상은 했지만, 직접 들으니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조여왔다. 그러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세자는.”
“관련 있습니다.”
짧고 명확한 대답이었다. 연서하는 잠시 말을 하지 않았다. 둘이 손을 잡았든, 아니면 각자 움직였든,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미 판은 만들어졌고, 자신은 그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나를 끌어내리려는 거네.”
백운경은 대답하지 않았다. 부정하지 않는 침묵이었다. 연서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밤의 왕부는 낮보다 더 넓어 보였고, 그 넓은 공간 안에 혼자 서 있는 느낌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증거는.”
“…아직은 없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연서하는 잠시 생각하다가 낮게 말했다.
“그럼 만들어야지.”
그 순간, 백운경의 눈이 처음으로 분명하게 흔들렸다.
“마마…?”
연서하는 천천히 돌아섰다.
“나 아무도 해칠 생각 없어.”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어 말했다.
“근데… 가만히 당하고 있을 생각도 없어.”
그녀의 눈은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그 안에 흔들림은 없었다. 백운경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잠시 서 있었다. 그리고 그때, 아주 짧게— 그의 시선이 달라졌다.
감시가 아니라, 판단하는 눈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지켜보는’ 눈으로.
다음 날 아침.
소율한의 집무실은 평소보다 더 조용했다. 탁— 문서가 책상 위에 내려놓였다.
“이게 전부냐.”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앞에 서 있던 자가 고개를 깊게 숙였다.
“현재까지 확인된 내용입니다.”
소율한은 아무 말 없이 문서를 내려다봤다. 정여주 측 시녀. 그리고 흐릿하게 연결된 이름 하나. 소진서.
그의 눈이 천천히 가늘어졌다.
“…이렇게까지 얽혀 들어온다고.”
혼잣말처럼 낮게 흘러나온 말이었다. 손가락으로 문서를 두 번 가볍게 두드리다가, 멈췄다. 그리고— 연서하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제 복도에서 마주섰을 때의 모습. 손목을 잡고 있었을 때도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던 눈, 흔들리면서도 물러서지 않던 태도. 그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너무 성급했는지, 아니면 여전히 의심이 남아 있는 건지, 그 경계가 애매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불러라.”
옆에 서 있던 사람이 고개를 들었다.
“누구를 말씀이십니까.”
잠깐의 침묵.
“연서하.”
이번에는 망설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