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나는 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04화 · 전체 16

모두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글 · 힐링아무

정여주를 처음 마주친 건, 내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이었다. 왕부 안채로 이어지는 긴 복도, 아직 아침 공기가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시간에 시녀 하나를 앞세우고 걸음을 옮기고 있었는데,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알아챘다.

정여주다. 소설에서 읽었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눈이 맑았고, 시선이 부드러웠으며, 웃으면 보조개가 생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실제로 입가가 조금만 움직여도 주변 공기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함께 걷는 사람까지 편안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인상이었다.

걸음걸이는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고, 옷자락은 과하지 않게 우아하게 흔들렸으며, 뒤를 따르는 시녀가 셋이나 되는 모습조차 자연스러웠다. …왕부 안채를, 저렇게 걷는구나. 나는 그 장면을 보며 아주 짧게 숨을 삼켰다. 질투 같은 감정은 아니었다.

그보다 더 단순하고 분명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감각에 가까웠다. 이 여자는 여기에서 오래된 사람이다. 소율한과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라온 사람. 이 왕부의 공기와 흐름에 이미 깊게 스며든 사람.

그래서 — 연서하보다 훨씬 자연스러운 사람. 그리고 나는. 이 공간에서, 이름만 정실인 사람.

정여주의 시선이 나에게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눈이 바뀌었다. 너무 짧아서 놓치기 쉬운 변화였지만, 분명히 있었다.

따뜻하게 풀려 있던 눈이, 아주 잠깐 식어 내려앉았다가 다시 부드럽게 돌아왔다. 완벽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나는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가 먼저 웃었다.

"어머, 왕비마마."

목소리는 예상대로 고왔다. 걱정스러운 듯 눈썹을 살짝 모으며 한 걸음 다가왔고, 거리감은 지나치게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절묘한 선에서 멈췄다.

"요즘 안색이 좋지 않으시다고 들었어요. 몸은 좀 어떠세요?"

들었다고. 나는 속으로 짧게 웃었다. 이 왕부 안에서, 내 안색을 일부러 챙겨서 말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군가 일부러 전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괜찮아요.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말을 내뱉는 순간, 일부러 목소리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눌렀다. 정여주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나는 확실히 느꼈다. 예상했던 반응이 아니라는 걸.

원작의 연서하였다면 이 자리에서 바로 감정을 드러냈을 것이다. 쏘아붙이거나, 노골적으로 무시했을 것이다. 그래서 정여주는 언제나 피해자였고, 연서하는 자연스럽게 악녀가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는 그냥 웃고 있었다.

"여주 씨도 안색이 좋네요."

여주 씨. 소저도, 아가씨도 아닌 — 이름에 씨. 격을 낮춘 것도 아니고, 일부러 거리를 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하게. 사람을 대하듯 불렀을 뿐이었다. 그게 오히려 더 크게 흔들렸다. 정여주의 눈동자가 아주 짧게 흔들렸다.

이유를 모르는 반응. 익숙하지 않은 방식. 그래서 더 불편한 상황.

"감사해요, 마마."

그녀는 곧바로 표정을 정리했다. 여전히 완벽한 미소였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럼 저는 이만."

"네, 조심히 가요."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피해 섰고, 아무 문제도 없었던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주 평범한 순간처럼 보였지만. 그 안에 담긴 건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뒤돌아보지도 않았다. 그저 일정한 속도로 계속 걸었다. 하지만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방금 그 눈.

걱정하는 얼굴 뒤에 숨겨져 있던, 아주 짧고 선명했던 그 싸늘한 기색. 나를 보는 순간,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반응이었다. 연서하가 달라졌다는 걸 — 정여주도 느끼고 있는 거다.

그리고. 그게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나는 시선을 낮췄다. 착한 사람이.

불안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원작에서.

그 이후의 흐름을. 발걸음이 아주 미세하게 무거워졌다.

같은 시각.

정여주는 복도를 걸으며 천천히 입꼬리를 내렸다. 뒤따르던 시녀들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늘 그랬듯이. 그녀는 조용히 생각했다.

연서하가 웃었다. 쏘아붙이지도 않았고,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저 — 자연스럽게 받아쳤다. 걱정해줘서 고맙다고 했다.

여주 씨라고 불렀다. …왜. 정여주의 손가락이 소매 안에서 천천히 말렸다. 연서하는 원래 저런 사람이 아니었다.

눈이 마주치면 날을 세웠고, 스쳐 지나가며 일부러 어깨를 부딪히기도 했으며, 소율한 앞에서는 서슴없이 자신을 깎아내리는 말을 던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달랐다. 달라진 게. 오히려 더 불편했다.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다루기 쉽다.

하지만. 갑자기 달라진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 정여주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창밖을 바라봤다.

아침 햇살 아래, 왕부의 정원이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평온한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생각이 떠올랐다. …두고 봐야겠어. 입가에 미소가 다시 천천히 돌아왔다. 이번에는.

조금 더 깊은 의미를 담은 채로. 소진서가 왕부를 찾아온 건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왕명을 전하러 왔다는 명목이었다. 소율한을 만나고 난 뒤, 그가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잠깐 생각을 멈췄다. …벌써.

원작보다 훨씬 빠른 타이밍이었다. 소진서는 원래 연서하가 완전히 고립된 이후에야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더 이상 기댈 곳이 없는 상태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그 손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그런데 지금은 아직 아니다.

무너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의지하지도 않은 상태인데 먼저 찾아온다. 확인하러 온 거다. 혹은, 그보다 더 빠르게 개입하려는 의도.

"들라 해."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나는 그를 보는 순간, 아주 짧게 시선을 멈췄다. 이전의 연서하라면 몇 번은 마주쳤을 얼굴이었겠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사실상 처음 보는 남자였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그리고 더 또렷하게 그를 살폈다.

옥색 도포를 입은 모습은 단정했고, 흐트러진 곳 없이 정리된 선은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쪽에 가까웠다. 전체적인 인상은 부드러웠고, 눈매는 온화하게 내려앉아 있어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이유 없이 경계를 늦추게 만드는 종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편안함이 오래 머물지 않았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그래서 더 의도적으로 느껴졌다.

"왕비마마,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세자라는 신분을 생각하면 과하지 않은 예였지만, 그 태도가 지나치게 자연스러워서 오히려 거리감을 흐리는 느낌이 있었다.

"안색이 밝아지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걱정이 담긴 것처럼 들렸고, 그게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저하."

나는 짧게 답례했다. 반기지도, 그렇다고 선을 긋지도 않은 채, 그저 예를 갖춘 정도의 반응. 그는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시녀가 차를 내오고 물러났다. 잠시 조용했다.

어색하지 않은 침묵이 흘렀다. 그가 먼저 찻잔을 들었다.

"요즘 왕비마마가 달라지셨다는 말이 들리더군요."

나는 그를 봤다.

"그래요?"

그가 가볍게 웃었다. 눈도 함께 웃고 있었다.

"조용해지셨다고. 예전과는 많이 다르다고 하던데요."

말은 가벼웠지만, 시선은 그렇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정확하게 나를 훑고 있었다. 나는 잔을 들어 올리며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사람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나요."

그는 잠깐 고개를 기울였다. 흥미를 느낀 사람의 반응이었다.

"물론입니다."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다만 갑자기 달라지면 주변이 놀라기 마련이라서요."

아주 짧은 간격.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

나는 속으로 그 단어를 천천히 되씹었다. 오해. 부드럽게 감싼 말이었지만, 의미는 분명했다. 지금처럼 행동하면 더 눈에 띈다.

나는 천천히 웃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하."

그의 시선이 잠깐 멈췄다.

"근데 저는 그냥 피곤해서 쉬는 것뿐이에요. 별다른 뜻은 없습니다."

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숨기지도, 드러내지도 않는 얼굴로. 그는 나를 읽고 있었다. 이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계산된 연기인지.

나는 피하지 않았다. 그냥 그대로 마주봤다. 짧은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먼저 시선을 거뒀다.

"…그렇군요."

말은 짧았지만, 완전히 물러난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래 머무르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요.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저하."

그가 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그대로 앉아 있었다. 문손잡이에 손이 닿는 순간, 그가 멈췄다. 그리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참."

돌아보지 않은 채였다.

"왕비마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시선을 그쪽으로 두었다.

"왕부 안에서 혼자 다니시는 건 조심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미묘하게 낮아져 있었다.

"요즘 이상한 소문도 돌고 있으니까요."

나는 천천히 눈을 가늘게 떴다.

"소문이요?"

그가 짧게 웃었다.

"별거 아닙니다."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말.

"그냥 — 조심하시라고요."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대로 문을 열고 나갔다. 문이 닫히고, 방 안이 조용해졌다. 나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천천히. 이상한 소문. 그건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미리 깔아두는 말.

혹은, 앞으로 벌어질 일을 위한 밑밥. 나는 시선을 문 쪽에 잠시 두었다. …확실하다. 소진서는.

이미 움직이기 시작했다. 연서하가 달라졌기 때문에. 자기 손 안에서 움직여야 할 패가,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기 때문에.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백운경이었다. 그는 들어오면서, 방금 닫힌 문을 한 번 바라봤다.

"들었어?"

내가 물었다.

"…예."

"세자 저하 움직임 봐줘."

나는 시선을 그에게 옮겼다.

"조용히."

백운경이 나를 봤다. 잠깐이었다. 무언가를 재는 눈이었다.

"알겠습니다."

그가 물러났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바깥을 바라봤다. 오후 햇살이 왕부 마당을 길게 가로지르고 있었다.

소진서가 움직이고. 정여주가 경계하고. 흐름이 예상보다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예측 가능했던 연서하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가 불안해한다. 나는 창틀에 손을 얹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끝에 남았다. 그래도 괜찮다. 불안한 건. 그쪽이어야 한다.

나는 — 죽지 않을 거니까.

0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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