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에서 온 부름은 예고 없이 찾아왔다. 이른 아침, 안채에 있던 연서 앞으로 내관이 직접 들이닥쳤다.
“폐하께서 왕비마마를 찾으십니다.”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거절할 수 없는 말이었다. 연서는 잠깐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들었다.
“…지금 가야 합니까.”
“즉시 드시라 하셨습니다.”
망설일 틈이 없었다. 연서는 아무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녀들이 급히 따라붙었지만, 준비를 길게 할 여유는 없었다. 왕궁으로 향하는 길 내내 공기가 무거웠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이번 부름이 가벼운 이유가 아니라는 건 분명했다. 대전 안은 차가웠다. 사람이 많았지만, 숨 쉬기조차 조심스러웠다.
대신들이 늘어서 있었고, 시선이 모두 연서에게 향했다. 연서는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연서하, 폐하를 뵙습니다.”
짧은 정적. 임금의 시선이 내려왔다.
“의금부에서 풀려났다고 들었다.”
담담한 말이었다. 하지만— 완전히 믿는 말투는 아니었다.
“예.”
“혐의는 벗었다고 하나.”
잠깐 멈췄다.
“의심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지.”
공기가 식었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었다. 임금이 천천히 말했다.
“왕가의 이름으로 준비된 연회에서 사람이 죽었다.”
“그 중심에 네가 있었다.”
“그 책임이 완전히 없는지—”
잠깐 멈췄다.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주변이 미세하게 술렁였다. 이미 끝난 일이 아니었다. 다시 끌어올린 것이다. 연서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다시 조사받겠습니다.”
담담한 대답이었다. 도망치지 않았다. 임금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겁이 없구나.”
“없습니다.”
짧은 대답. 그 순간—
“폐하.”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공기가 단번에 갈라졌다. 모든 시선이 돌아갔다. 소율한이었다.
그는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걸음이었다. 대전 한가운데까지 와서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임금이 눈을 가늘게 떴다.
“섭정왕.”
소율한이 짧게 말했다.
“이 일은 이미 의금부에서 종결되었습니다.”
“왕비 또한 혐의에서 벗어났습니다.”
단정한 말이었다. 임금이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소율한의 눈이 더 깊어졌다.
“같은 이유로 다시 부르는 것은—”
잠깐 멈췄다.
“…정당하지 않습니다.”
대전 안이 얼어붙었다. 누군가는 숨을 삼켰고, 누군가는 눈을 피했다. 임금의 표정이 완전히 식었다.
“지금.”
낮게 말했다.
“내가 정당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냐.”
짧은 정적. 소율한은 물러서지 않았다.
“폐하.”
조금 더 낮은 목소리였다.
“책임은 이미 제가 졌습니다.”
“조사도 제가 맡았고, 결론도 제가 냈습니다.”
“그 결과를—”
잠깐 멈췄다.
“…제가 다시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 말은 단순한 دفاع이 아니었다. 선언이었다. 임금의 눈이 완전히 가라앉았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직접적인 질문. 대전이 완전히 조용해졌다. 소율한의 시선이 아주 잠깐 움직였다. 연서에게.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제 판단입니다.”
짧은 답.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임금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손을 내렸다.
“데리고 가라.”
짧은 말. 허락이었다. 대전을 나왔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율한도 마찬가지였다. 둘 사이에 긴 침묵이 흘렀다. 왕궁 복도를 지나, 바깥으로 나올 때까지. 그리고—
사람이 없는 곳에 이르러서야, 연서가 멈췄다.
“…왕야.”
소율한이 걸음을 멈췄다. 돌아봤다. 연서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같은 질문. 하지만— 이번에는 더 무거웠다. 소율한이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늦게 알았다.”
연서는 그를 봤다.
“뭘요.”
“지킬 걸.”
짧은 말.
“…놓치고 싶지 않다는 걸.”
연서의 숨이 멈췄다. 그 말은 단순하지 않았다. 돌아갈 수 없는 말이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연서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그럼.”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저도— 믿어도 됩니까.”
소율한의 눈이 깊어졌다. 망설임이 없었다.
“이미.”
짧게 말했다.
“…늦었다.”
그 말은— 거절이 아니었다. 되돌릴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고개를 아주 작게 끄덕였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확실한 무언가가 생겼다. 그리고 동시에— 소율한에게도 생겼다. 약점.
연서하. 이제는— 숨길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