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나는 소설 속 악녀로 빙의했다

14화 · 전체 16

말 없이 가까워진 거리

글 · 힐링아무

왕부의 오후는 평온해 보였지만, 그 안쪽은 여전히 긴장이 남아 있었다. 연서는 안채 서고에 앉아 있었다. 의금부에서 돌아온 뒤로, 사람을 피하는 대신 조용한 곳을 찾게 됐다. 서고는 그런 의미에서 가장 적당한 공간이었다. 책장을 넘기고 있었지만, 내용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잠깐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때— 문이 열렸다. 연서는 고개를 들었다.

소율한이었다. 그는 서고 안을 한 번 훑어보고는, 말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 있었군.”

짧은 말. 연서는 책을 덮었다.

“찾으셨습니까.”

“아니다.”

잠깐 멈췄다.

“…그냥 온 거다.”

그 말이 의외였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율한이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둘 사이에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어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조용함이었다.

“몸은 어떠냐.”

그가 먼저 물었다. 연서는 짧게 답했다.

“많이 괜찮아졌습니다.”

소율한의 시선이 그녀에게 머물렀다.

“많이 말고.”

짧게 말했다.

“…정확하게.”

연서는 잠깐 웃었다.

“…아직은 좀 무겁습니다.”

솔직한 대답이었다. 소율한이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그럼 앉아 있어라.”

연서는 눈을 깜빡였다.

“지금도 앉아 있는데요.”

“더 움직이지 말라는 뜻이다.”

무뚝뚝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건 분명했다. 연서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앉아 있었다. 잠깐의 침묵. 책장 사이로 바람이 아주 약하게 스쳤다. 종이 넘기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렸다.

소율한이 손을 뻗었다. 연서가 보던 책을 가져갔다.

“…이런 걸 보느냐.”

연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해서요.”

소율한이 책을 잠깐 훑어보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재미없다.”

단정한 평가였다. 연서가 작게 웃었다.

“…재미로 보는 건 아닙니다.”

“그럼.”

“머리 비우려고요.”

짧은 대답. 소율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건—”

잠깐 멈췄다.

“…다른 방법이 더 낫다.”

연서는 고개를 기울였다.

“어떤 방법이요.”

소율한이 잠깐 그녀를 봤다. 그리고— 아무 말 없이 손을 내밀었다. 연서의 손목을 가볍게 잡았다.

놀랄 정도로 부드럽게.

“…이렇게.”

짧은 말. 연서는 잠깐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손이 따뜻했다.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느껴졌다.

“생각하지 말고.”

소율한의 목소리가 낮게 이어졌다.

“…그냥 있어라.”

연서는 시선을 내렸다. 잡힌 손목을 봤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힘을 풀었다.

놓지 않았다. 피하지도 않았다. 잠깐의 침묵. 하지만—

이제는 편안했다. 연서는 조용히 말했다.

“…왕야.”

“왜.”

“이렇게까지 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짧은 말. 소율한이 손을 놓지 않은 채 대답했다.

“…필요 있다.”

단정한 말이었다. 연서는 더 묻지 않았다. 그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으니까.

창밖에서 바람이 스쳤다. 서고 안의 공기가 조금 부드러워졌다. 둘은 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같은 공간에 있었다. 같은 시간 안에. 그렇게 조용히, 두 사람 사이의 거리는—

말 없이도 조금 더 가까워졌다.

1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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