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부 안채의 오후는 유난히 길게 늘어져 있었다. 바람은 불지 않았고, 햇빛은 고요하게 마당을 덮고 있었지만 공기는 묘하게 무거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 안쪽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연서는 혼자 서 있었다. 연못가였다.
물 위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깐 내려다보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된 상태는 아니었다. 몸이 가벼운 날보다, 무거운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멈추지는 않았다. 멈추면 다시 끌려갈 것 같았으니까. 그때였다.
“혼자 계시네요.”
뒤에서 들린 목소리. 연서는 돌아보지 않아도 알았다. 소진서. 그는 이미 가까이 와 있었다. 발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 의도적인 걸음이었다.
연서는 천천히 돌아섰다. 소진서는 여전히 단정했다. 옥색 도포에 흐트러짐 없는 차림, 부드러운 인상. 하지만— 그 눈은 전혀 부드럽지 않았다.
“의금부에서 나오신 지 얼마 안 되셨는데, 이렇게 돌아다니셔도 괜찮습니까.”
말은 걱정 같았지만, 전혀 아니었다. 연서는 담담하게 답했다.
“세자 저하께서 걱정하실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소진서가 웃었다.
“그렇게 선을 긋는군요.”
그리고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래도—”
시선이 느리게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갔다.
“이번 일로 확실해진 건 하나 있지 않습니까.”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진서가 낮게 말했다.
“왕야께서, 왕비마마를 꽤 아끼신다는 거.”
공기가 미묘하게 변했다. 연서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게 저하께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소진서의 웃음이 아주 조금 깊어졌다.
“…많은 의미가 있죠.”
잠깐 멈췄다.
“원래 계획이— 조금 바뀌었거든요.”
그 말은 가볍게 던진 게 아니었다. 연서는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 소진서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는 거의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였다.
“…그때 의금부에서, 제 제안을 거절하셨죠.”
낮은 목소리였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습니다.”
연서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가요.”
소진서의 시선이 깊어졌다.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
그 순간이었다.
“세자.”
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공기가 단번에 갈라졌다. 소율한이었다. 그는 이미 가까이 와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조용하게.
소진서가 천천히 돌아봤다.
“왕야.”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살짝 날이 서 있었다. 소율한의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훑었다.
짧게, 정확하게. 그리고— 연서 쪽으로 아주 잠깐 머물렀다가 다시 돌아왔다.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다.”
단정한 말이었다. 소진서가 웃으며 말했다.
“왕부 안인데요.”
“그래서 더 그렇다.”
짧은 응수. 공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소진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가늘어졌다.
“…요즘 많이 바뀌셨습니다.”
소율한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보고 있었다. 소진서는 잠깐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연서를 한 번 더 봤다. 그 시선은 이전과 달랐다. 더 노골적이고, 더 집요했다.
“…다음에 또 뵙죠.”
그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걸어가는 발걸음이 느리지 않았다. 하지만— 여유도 있었다.
완전히 물러난 건 아니었다. 문제는 아직 남아 있었다. 소진서가 사라지고 나서야 공기가 조금 풀렸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율한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가까이 두지 마라.”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조언이 아니었다. 연서는 조용히 그를 봤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소율한의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됐다.
“알고 있으면서—”
잠깐 멈췄다.
“…그 거리를 허용했느냐.”
그 말은 날카로웠다. 연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피해도 다시 옵니다.”
짧은 정적.
“차라리—”
시선을 마주했다.
“…보이는 곳에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율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는 잠깐 말을 잇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무모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나무라는 톤이 아니었다. 연서는 작게 웃었다.
“…살아남으려면요.”
짧은 말이었다. 그 말이 떨어진 순간— 소율한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변했다. 그는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거리가 좁혀졌다.
“다시는.”
낮게 말했다.
“…혼자 그런 판단 하지 마라.”
연서는 잠깐 숨을 멈췄다. 시선이 흔들리지 않았다.
“왜요.”
짧은 질문. 소율한의 눈이 깊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내가 있으니까.”
공기가 멈췄다. 연서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 말이 예상보다 더 깊게 들어왔다. 소율한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저— 아주 잠깐, 그녀를 더 가까이에서 바라봤다. 그리고 돌아섰다.
“…몸부터 챙겨라.”
짧게 덧붙였다. 연서는 그 자리에 남았다. 움직이지 못한 채.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누군가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정여주였다. 그녀의 손이 소매 안에서 천천히 쥐어졌다.
눈이 완전히 식어 있었다.
“…이제—”
작게 중얼거렸다.
“…정리해야겠네.”
그 순간. 이야기는 다시— 더 위험한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