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금부의 밤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문이 닫힌 뒤에도 소진서가 남기고 간 공기가 오래 머물렀다. 연서는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지만, 겉으로는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았다. 선택은 이미 끝났다. 흔들릴 이유도, 돌아갈 길도 없었다.
잠시 후, 복도에서 다시 발소리가 멈췄다. 이번에는 다르게 느껴졌다. 문이 열렸다. 노크는 짧게 있었다. 연서는 눈을 떴다.
소율한이었다. 그는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멈췄다. 시선이 먼저 움직였다. 방 안, 그리고 연서에게. 조금 전과는 달랐다. 아주 미세하게— 더 무거웠다.
“…누가 왔다 갔지.”
낮게 물었다. 연서는 잠깐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했다.
“세자였습니다.”
짧은 정적이 흘렀다. 소율한의 눈이 완전히 식었다.
“무슨 말을 했느냐.”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연서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대신 조건을 걸었습니다.”
소율한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어떤 조건이다.”
연서는 잠깐 숨을 고르고 말했다.
“자기 사람이 되라고.”
정적. 이번에는 더 길었다. 소율한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었다.
“그래서.”
짧게 물었다. 연서는 망설이지 않았다.
“거절했습니다.”
그 순간, 소율한의 시선이 깊게 내려앉았다. 확인하는 눈이었다. 연서는 그대로 받아냈다.
피하지 않았다.
“왜.”
짧은 질문이었다. 연서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이미 선택했으니까요.”
소율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누굴.”
연서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소율한이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잘했다.”
낮게 말했다. 그 말은 짧았지만, 가볍지 않았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조금 더 날카로워졌다.
“이제 확실해졌다.”
연서는 그를 바라봤다.
“이번 일.”
소율한이 천천히 말했다.
“안에서만 움직인 게 아니다.”
“밖에서도 손을 대고 있다.”
그 말은 곧— 소진서까지 포함된다는 뜻이었다. 연서는 조용히 숨을 들이켰다.
“그럼…”
소율한이 말을 끊었다.
“걱정하지 마라.”
이번에는 조금 더 단단한 목소리였다.
“이 판, 내가 끝까지 본다.”
잠깐 멈췄다.
“그리고.”
시선이 더 깊어졌다.
“이번에는—”
아주 미세하게 낮아졌다.
“…절대 놓치지 않는다.”
그 말은 단순한 다짐이 아니었다. 결정이었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율한이 몸을 돌렸다. 문 쪽으로 걸어가다가 멈췄다.
“…조금만 더 버텨라.”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곧 끝난다.”
문이 열리고, 다시 닫혔다. 연서는 그 자리에 남았다.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손끝이 여전히 차가웠지만,
이제는 조금— 덜 흔들렸다.
그날 이후, 의금부 안의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던 선이 드러났고, 숨겨져 있던 움직임이 하나씩 드러났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이름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소진서. 판은 이미 끝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의금부의 공기는 마지막까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며칠간 이어진 조사 끝에, 결론을 내리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연서는 조용히 서 있었다.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의 눈이었다.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의금부 관리들, 대신들, 그리고 고개를 떨군 시녀와 하인들. 시선이 자연스럽게 한 곳으로 모였다. 소율한. 그가 입을 열었다.
“조사는 끝났다.”
짧고 단정한 말이었다.
“황후 생신연에서 사용된 술은 왕가에서 준비된 것이 맞다.”
“그러나 연회장에 들기 직전, 일부가 바뀌었다.”
조용히 이어졌다.
“잔과 술의 이동 경로, 전달 과정, 개입된 인물까지 확인됐다.”
의금부 관리가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관련 시녀와 하인들은 모두 자백했습니다. 지시를 받고 움직였다고.”
잠깐의 침묵. 그리고— 소율한이 낮게 말했다.
“지시는 중간에서 끊겼다.”
연서의 눈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윗선이 있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움직였다.
“누군지는 알고 있다.”
방 안의 공기가 멈춘 듯 조용해졌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은 없었다.
“그러나 물증은 없다.”
단정적인 결론이었다.
“전달자는 죽었고, 연결 고리는 모두 끊겼다.”
“남아 있는 건 진술뿐이다.”
그 말은 곧— 잡을 수 없다는 뜻이었다. 연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저 가만히 서 있었다. 소율한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연서하.”
연서는 고개를 들었다.
“왕비를 향한 혐의는 성립되지 않는다.”
짧은 선고였다.
“즉시 석방한다.”
방 안의 공기가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는 안도했고, 누군가는 불만을 삼켰다. 하지만 누구도 반박하지 못했다. 연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몸이 순간 기울었다.
시야가 하얗게 번졌다. 버텨왔던 긴장이 한 번에 끊어졌다.
“…연서하!”
소율한의 목소리가 낮게 떨어졌다. 그는 거의 동시에 움직였다. 쓰러지는 연서를 그대로 받아냈다. 팔 안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가벼웠다. 생각보다 훨씬. 그의 눈이 순간 굳었다.
“의관 불러라.”
짧고 날카로운 명령이 떨어졌다. 주변이 동시에 움직였다. 소율한은 망설이지 않았다. 연서를 그대로 안아 들었다.
완전히. 그녀의 몸이 그의 품 안에 깊이 들어왔다. 연서의 숨이 얕게 이어졌다. 의식이 거의 없었다.
소율한의 턱선이 단단하게 굳었다.
“길 비켜라.”
낮게 말했다. 사람들이 즉시 길을 열었다. 그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의금부를 벗어나, 왕실 객실로 향했다.
발걸음이 멈추지 않았다. 연서를 안은 채, 단 한 번도 내려놓지 않았다. 문이 열리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다.”
침상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깐 멈췄다. 그리고—
억지로 떼어냈다. 의관이 들어왔다.
“살펴라.”
짧은 명령. 의관이 빠르게 상태를 확인했다.
“기력이 심하게 쇠했습니다. 열도 있습니다. 며칠간 제대로 드시지 못하신 듯합니다.”
소율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서를 보고 있었다. 창백한 얼굴. 숨이 얕게 오르내리는 모습.
그의 손이 아주 미세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끝내 닿지 않았다.
“…이렇게 될 때까지.”
낮게 중얼거렸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방 안은 조용했다. 그리고 그 순간—
처음으로. 그의 눈에 감정이 남았다. 숨기지 못한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