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이사님의 첫사랑은 나였다

08화 · 전체 23

"예고된 만남"

글 · 힐링아무

그날 오후, 회사 로비는 평소와 다른 어수선한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다. 직원들이 저마다 시선을 한곳에 고정한 채 수군거리고 있었다.

"저 사람 누구야?"

"몰라, 처음 보는 얼굴인데. 근데 뭔가 범상치 않아."

우아한 정장 차림의 여자가 로비 중앙을 가로질러 걸어오고 있었다. 흐트러짐 없는 걸음걸이와 여유로운 미소, 걸음마다 시선을 붙잡는 화려한 존재감이었다. 그녀가 곧장 향한 곳은 임원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저분, 회장님 손님이라던데. 유설이라고."

"유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모 그룹 외동딸이라던데. 예전부터 여기 종종 왔었대."

직원들의 수군거림이 채령의 귀에까지 들려왔다. 그 이름에 채령은 별생각 없이 고개를 갸웃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그 오후, 채령은 예정에 없던 임원 회의 자료를 전달하러 최상층으로 향했다. 회의실 앞 복도에서, 그녀는 뜻밖의 장면과 마주쳤다. 조금 전 로비에서 봤던 그 여자가, 백결과 나란히 서 있었다.

"결아, 오랜만이야."

여자의 목소리에는 친밀함이 짙게 묻어 있었다.

"…여긴 어쩐 일이야."

백결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고 무거웠다.

"아버님이 부르셨어. 너희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 오늘 자리 한번 가지시기로 했거든."

유설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인기척을 느낀 백결이 고개를 돌려 채령을 발견했다. 그의 표정이 순간 당황으로 물들었다.

"…채령아."

그 부름에, 유설의 시선도 자연스럽게 채령에게로 향했다. 위아래로 훑는 시선이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냉기는 분명했다.

"어머, 이분이구나."

유설이 여유롭게 웃으며 말했다.

"디자인팀 신입사원, 진채령 씨 맞죠? 결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의미심장한 소개였다. 채령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불편한 기류를 느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반가워요. 저는 유설이라고 해요. 결이랑은, 뭐랄까. 집안끼리 오래전부터 얘기가 오가는 사이랄까."

백결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유설아, 그렇게 말하지 마."

"왜, 틀린 말도 아닌데. 우리 아버지들끼리 오래전부터 정해두신 얘기잖아."

"그 얘기, 나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받아들인 적 없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백결이 담담하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그 말투에는 오랫동안 반복해왔을 지침이 묻어 있었다.

"…그때는 그때고, 지금은 상황이 다르잖아. 우리 아버지들끼리 이번엔 확실히 매듭짓자고 하셨어."

"내 입장은 한 번도 바뀐 적 없어. 예전에도, 지금도. 그래서 계속 거절해왔던 거고."

백결의 목소리가 조금 더 단단해졌다.

"나는 지금 만나는 사람 있어. 채령이야. 여기 있는 사람."

"…이렇게 갑자기?"

"갑자기가 아니야. 유설이 너도 알잖아, 내가 그 얘기 나올 때마다 매번 확실히 선 그었던 거."

백결의 담담하지만 확고한 말에, 유설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처음으로 사라졌다. 채령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그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자신의 존재가 이렇게 명확하게 선언되는 순간이, 낯설고도 떨렸다.

유설은 잠시 말없이 채령을 바라봤다. 그 시선 속에는, 방금 전까지 없던 날카로운 적의가 서서히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 알겠어."

그녀가 낮게 답했다. 겉으로는 순순히 물러나는 듯했지만, 그 말투 속에 담긴 냉기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근데 결아,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닌 거 알지? 우리 집안 사이에 오간 얘기가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되는 건 아니야."

"…그건 어른들이 해결할 문제야. 나는 이미 마음을 정했어."

백결의 확고한 대답에, 유설은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이내 채령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채령 씨."

"…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은데, 각오는 하고 있는 게 좋을 거예요."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결코 다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렇게 말을 남기고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굽 소리가 복도를 울리며 멀어져 갔다. 두 사람만 남은 복도에서, 백결이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해. 이렇게 갑자기 알게 될 줄은 몰랐는데."

"괜찮아. 근데, 저 사람이랑 진짜 집안끼리 정해진 사이였어?"

채령이 조심스레 물었다. 백결은 잠시 침묵하다가, 솔직하게 답했다.

"…어릴 때부터 어른들 사이에서 나온 얘기였어. 근데 나는 한 번도 그걸 진지하게 받아들인 적 없어."

"근데 저 사람 반응 보니까, 쉽게 물러날 것 같지 않은데."

"…그럴 수도 있어. 근데 걱정하지 마. 내가 확실하게 정리할게."

백결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근데 결아, 아버님은 어떻게 생각하실까. 나 같은 사람 만나는 거."

채령의 목소리에 옅은 불안이 묻어났다. 백결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단호하게 답했다.

"그건 내가 알아서 설득할 문제야. 채령이가 신경 쓸 부분 아니야."

"근데 그게 어떻게 신경이 안 쓰여. 나 때문에 너 곤란해지는 거잖아."

"곤란해도 상관없어. 이미 마음 정했다고 했잖아."

백결의 단호한 대답에, 채령은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방금 전 유설의 눈빛에서 느껴졌던 서늘함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근데 저 사람, 진짜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 않던데."

"…그럴 수도 있어. 근데 그것도 내가 감당할 부분이야. 채령이는 그냥 나만 믿으면 돼."

채령은 그 말에 옅게 웃었다. 그의 확신이 든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막연한 불안이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앞으로 쉽지 않겠구나.'

채령은 막연한 불안을 느끼면서도, 곁에 있는 백결의 손을 마주 잡으며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같은 시각, 회사를 나선 유설은 차 안에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나야."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제갈도진이었다.

"…결이, 여자친구 생겼대. 방금 직접 봤어."

"오, 생각보다 빠르게 확인했네. 어떤 사람이던데."

"진채령이라고, 디자인팀 신입사원."

짧은 침묵이 흘렀다. 이내 제갈도진의 목소리가 흥미롭다는 듯 가벼워졌다.

"…어, 그 사람. 마침 나도 잘 아는 이름인데."

"…뭐? 너도 알아?"

"어. 이번 프로젝트 때문에 몇 번 마주쳤거든. 근데 이거 진짜 재밌게 됐네."

유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 서로 원하는 게 겹치는 것 같아서.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자."

전화를 끊은 유설의 얼굴에, 방금 전까지의 동요는 사라지고 차가운 계산만이 남아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며, 앞으로의 계획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0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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