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이후로, 태오와 하린은 부쩍 자주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채령과 백결의 일로 자연스럽게 얽히기 시작했던 두 사람은, 위기가 지나간 뒤에도 그 인연을 이어가고 있었다.
"태오 씨, 오늘도 회사 앞에서 봐요?"
하린의 메시지에, 태오는 옅게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네, 늘 가던 그 카페에서."**
이제는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두 사람은 퇴근길에 자연스럽게 만나 커피를 마시는 게 일상이 되어 있었다. 처음엔 채령과 백결의 안부를 나누기 위한 자리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 화제가 뒷전으로 밀려나 있었다.
"근데 오늘은 또 무슨 얘기 하려고 만나자고 한 거예요?"
하린이 장난스레 물었다.
"…딱히 할 얘기가 있어서 만나자고 한 건 아닌데요."
"그럼요?"
"그냥, 하린 씨 얼굴 보고 싶어서요."
태오의 담담한 대답에, 하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의 그런 직설적인 태도가, 매번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근데 태오 씨는 백결 씨랑 어떻게 그렇게 친해진 거예요?"
카페에 마주 앉은 하린이 궁금한 듯 물었다.
"대학 때부터요. 걔가 워낙 말이 없고 무뚝뚝해서, 처음엔 친해지기 힘들었는데. 어쩌다 보니 계속 붙어 다니게 됐어요."
"그럼 채령이 얘기도 그때부터 알고 있었어요?"
하린의 물음에, 태오는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듯 미소 지었다.
"어느 정도는요. 정확히는 몰랐지만, 뭔가 마음에 담아둔 사람이 있다는 느낌은 있었어요. 술 취하면 딱 한 번씩 흘리듯 얘기하곤 했거든요."
"…그럼 채령이가 다시 나타났을 때, 되게 놀랐겠네요."
"엄청요. 십 년 만에 그렇게 다시 마주칠 확률이 얼마나 되겠어요. 근데 그것보다 더 놀란 건, 결이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움직이는 모습이었어요. 원래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어떤 사람인데요, 원래?"
"뭐든 신중하고, 확실하지 않으면 절대 안 움직이는 타입. 근데 채령 씨 일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더라고요."
태오의 설명에, 하린은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근데 저는 그거보다, 두 사람 지켜보면서 하린 씨랑 이렇게 자주 보게 된 게 더 신기해요."
태오의 담담한 말에, 하린은 순간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그냥, 원래는 이렇게 누군가랑 자주 연락하고 만나는 거 잘 안 하는 성격인데. 하린 씨는 좀 다르더라고요."
"…그럼 저도 태오 씨한테 좀 특별한 사람인 거예요?"
하린이 짐짓 장난스레 물었지만, 그 목소리에는 옅은 기대가 묻어 있었다.
"글쎄요. 그건 앞으로 더 지켜봐야 알 것 같은데요."
태오의 여유로운 대답에, 하린은 피식 웃으며 커피잔을 매만졌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공기가, 조금씩 특별한 온도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며칠 후, 회사 워크숍이 있던 날. 자유 시간에 다른 직원들이 각자 흩어진 사이, 태오와 하린은 자연스럽게 숙소 근처 산책로를 함께 걸었다.
"…여기 경치 진짜 좋네요."
하린이 감탄하며 말했다.
"그러네요. 이런 데 오니까, 회사 일 다 잊게 되는 것 같아요."
두 사람은 나란히 걸으며, 시답잖은 이야기들을 나눴다. 어색함 없이 편안한 침묵이 흐르는 순간도 자연스러웠다.
"태오 씨는 원래 이렇게 여유로운 성격이었어요?"
"아니요. 사실 회사에서는 늘 정신없이 바쁜데, 하린 씨 앞에서만 좀 여유로워지는 것 같아요."
"…그거 되게 은근한 고백 아니에요?"
하린이 웃으며 되물었다.
"은근하게 한 거 아니고, 그냥 사실을 말한 거예요."
태오의 진지한 대답에, 하린은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
"…결이 씨랑 진짜 닮았네요.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직진하는 거."
"오래 붙어 다니다 보니 닮아가나 봐요."
두 사람은 그렇게 웃으며 계속 걸음을 옮겼다. 저녁 무렵의 노을이 산책로 전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근데 하린 씨."
태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네?"
"저, 하린 씨한테 궁금한 게 있는데. 혹시 지금 만나는 사람 있어요?"
뜻밖의 질문에, 하린은 순간 당황했다.
"…없는데요. 왜 그런 걸."
"그냥, 궁금해서요. 만약 없다면, 저랑 좀 더 편하게 만나볼 생각 있으신지."
태오의 직설적인 물음에, 하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거, 지금 저한테 마음 있다는 뜻이에요?"
"네. 정확히 그 뜻이에요."
태오가 담백하게 답했다. 하린은 순간 웃음이 터졌다.
"…이렇게 직진하는 스타일인 줄 몰랐는데."
"저도 몰랐어요. 근데 하린 씨 앞에서는 이상하게 그렇게 되더라고요."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옅게 웃었다. 노을이 두 사람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고 있었다.
"…저도, 싫지 않아요. 태오 씨."
하린의 수줍은 대답에, 태오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럼, 우리 이제부터 제대로 만나보는 거예요?"
"…네. 천천히, 잘 만나보자고요."
하린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태오는 그 대답이 못내 기쁜 듯,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어, 벌써 손을 잡아요?"
"싫으면 놓을게요."
"…아니요. 그냥, 놀라서요."
하린이 얼굴을 붉히며 답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손을 맞잡은 채, 저물어가는 노을 속을 나란히 걸었다.
다음 날, 회사로 돌아온 두 사람은 채령과 백결에게 이 소식을 전했다.
"…뭐? 두 사람 진짜 사귀기로 한 거야?"
채령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어. 워크숍 갔다가, 그렇게 됐어."
하린이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드디어! 나 진작부터 그럴 줄 알았어!"
채령이 반갑게 그녀를 끌어안았다. 백결도 태오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음을 지었다.
"…축하한다, 진짜."
"고맙다. 근데 이게 다 너희 덕분이야. 너희 아니었으면, 이렇게 자주 만날 일도 없었을 텐데."
태오의 말에, 네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크고 작은 위기들을 함께 견뎌낸 시간들이, 이렇게 또 다른 행복한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