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마무리된 후, 채령은 일주일간 휴가를 받아 집에서 쉬었다. 백결은 매일같이 그녀를 찾아와, 곁을 지켰다.
"…이제 좀 괜찮아졌어?"
백결이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잡으며 물었다.
"어. 처음보다는 많이 나아졌어. 그때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좀 빨리 뛰긴 하는데, 그래도 괜찮아."
채령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백결은 그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그녀를 끌어안았다.
"…미안해. 진작에 더 확실하게 지켰어야 했는데."
"결이 잘못 아니야. 오히려 결이가 있어서 내가 이렇게 버틸 수 있었던 거야."
채령의 담담한 말에, 백결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머리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휴가 기간 동안, 백결은 매일 퇴근 후 그녀의 집에 들러 저녁을 함께하고, 주말이면 하루 종일 곁에 머물렀다. 억지로 밝은 척하지 않아도 되는, 온전히 편안한 시간이었다.
"…근데 결아, 나 요즘 조금씩 다시 잠도 잘 오고, 마음도 편해지는 것 같아."
채령이 소파에 기대어 말했다.
"다행이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해."
"이게 다 결이 덕분이야. 매일 이렇게 옆에 있어줘서."
"당연한 거야. 채령이 옆에 있는 게, 나한테도 제일 좋은 시간이니까."
두 사람은 그렇게 소소한 일상을 나누며, 함께 마음의 상처를 천천히 아물게 하고 있었다. 일주일 후, 채령은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사무실 사람들은 그녀를 조심스럽게, 하지만 진심으로 반겨줬다.
"채령 씨, 이제 괜찮은 거예요?"
팀장이 걱정스레 물었다.
"네, 이제 괜찮습니다. 다시 잘 부탁드릴게요."
채령이 밝게 웃으며 답했다. 하린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고생했어, 진짜. 이제 우리 예전처럼 잘 지내보자."
"응, 고마워. 그동안 옆에서 계속 챙겨줘서."
"당연하지. 근데 채령아, 사람들이 다 너 걱정 많이 했어. 이상하게 쳐다보던 시선들도 이제 다 사라졌고."
하린의 말에, 채령은 문득 처음 표절 의혹이 돌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따뜻한 분위기였다.
"…그러게. 사람들 시선이 이렇게 달라질 수도 있구나 싶어."
"당연하지. 다 밝혀졌잖아, 네가 얼마나 힘들게 버텼는지."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평범한 하루의 소중함이, 채령의 마음을 잔잔하게 채우고 있었다. 점심시간, 팀원들이 자연스럽게 그녀를 둘러싸고 안부를 물었다. 예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이 순간이, 채령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백결은 채령을 데리고 한강이 보이는 조용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예전, 두 사람이 처음 마음을 확인했던 그 장소였다.
"…여기, 그때 그 자리네."
채령이 반갑게 웃으며 말했다.
"어. 오늘은 좀 특별한 얘기를 하고 싶어서, 여기로 다시 왔어."
백결의 진지한 목소리에, 채령은 순간 긴장했다.
"…무슨 얘기인데?"
"우리, 그동안 정말 힘든 일들 많이 겪었잖아. 유설이 일, 도진이 일. 근데 그 모든 걸 다 이겨내고 여기까지 왔어."
백결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이었다.
"솔직히, 그 사건 있고 나서 며칠 동안 계속 생각했어. 만약 그때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어떻게 됐을까 하고. 그러면서 깨달은 게 있어."
"…뭘 깨달았는데?"
"채령이를 지킨다는 게, 그냥 위험할 때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거. 진짜로 옆에 있으려면, 더 확실한 자리에서 지켜야 한다는 걸 알았어."
백결의 진지한 말에, 채령은 숨을 죽이고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서, 이제는 좀 더 확실한 걸 약속하고 싶어."
"…확실한 거라니?"
"채령이 없는 삶은, 이제 상상도 안 돼.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같이 있고 싶어. 그리고 언젠가는, 정식으로 가족이 되고 싶어."
백결의 담백한 진심에, 채령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나도 그래. 나도 결이 없는 삶은 이제 상상 못 하겠어."
"…그럼,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준비하자. 서두르지 않고, 제대로."
"응. 천천히, 확실하게."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창밖으로 흐르는 한강의 야경이,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조용히 비추고 있었다. 레스토랑을 나선 두 사람은, 강변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문득 걸음을 멈춘 백결이, 채령을 가만히 끌어당겼다.
"…결아?"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좀 더 붙잡고 싶어서."
그가 낮게 속삭이며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강바람이 두 사람을 스치는 사이, 오래도록 이어진 그 입맞춤 속에는 그동안의 모든 시간에 대한 감사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입술이 떨어진 후, 채령이 그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작게 웃었다.
"…이러다 나 계속 이렇게 붙잡혀 있을 것 같은데."
"그래도 좋으면, 계속 이러자."
백결의 장난스러운 대답에, 채령은 그의 품에서 행복하게 웃었다.
같은 시각, 회사 근처 카페에서는 태오와 하린이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제 진짜 다 끝났나 봐요. 두 사람 표정 보니까."
하린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이제 우리도 좀 편하게 지켜볼 수 있겠어요."
태오의 대답에, 하린은 문득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근데 태오 씨는, 그동안 옆에서 이런저런 일 다 챙기면서 힘들지 않았어요?"
"힘들었죠. 근데 친구가 저렇게 행복해하는 거 보니까, 그동안 고생한 게 다 보상받는 기분이에요."
태오가 커피잔을 매만지며 답했다.
"십 년 넘게 봐온 친구인데, 이렇게 활짝 웃는 모습은 처음 봤거든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었어요."
"그런 얘기 들으니까 저도 괜히 뭉클하네요. 채령이도 그동안 진짜 많이 힘들어했는데, 이제 조금씩 웃음이 많아지는 게 느껴져서 다행이에요."
하린의 말에, 태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하린 씨, 우리도 그동안 고생 많았잖아요. 이렇게 편하게 커피 마시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은데."
"그러네요. 우리도 나름 조연치고는 열심히 뛰었죠?"
하린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태오도 그 말에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조연이라니, 저는 꽤 비중 있는 역할이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에이, 그건 본인 생각이고."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을 나눴다. 긴 폭풍이 지나간 뒤, 모두의 일상에 다시 평온함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평온함 속에서, 또 다른 작은 인연의 씨앗이 조용히 움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