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늦은 저녁. 채령은 야근을 마치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백결이 붙여준 경호 직원이 잠시 차를 가지러 간 사이, 채령은 혼자 기둥 사이 어두운 통로를 걷고 있었다.
발소리가 들렸다. 뒤가 아니라, 앞에서.
"…채령 씨."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건, 제갈도진이었다. 평소의 여유로운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눈빛이 이상하리만치 번들거리고 있었다. 며칠 사이 부쩍 수척해진 얼굴이, 그가 지금 얼마나 벼랑 끝에 몰려 있는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여긴 어떻게 들어오신 거예요."
채령의 목소리가 떨렸다. 주차장 전체에 인기척이라곤 그 둘뿐이었다. 형광등 하나가 깜빡이며, 그의 그림자를 기괴하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경찰 조사받으러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은 봐야 할 것 같아서."
"…지금 당장 비켜주세요. 안 그러면 소리 지를 거예요."
"소리 질러도 돼요. 근데 여기, 아무도 안 들어요."
제갈도진이 한 걸음 다가섰다. 채령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지만,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닿았다.
"…저리 가요!"
"채령 씨, 나 진짜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요. 딱 한 번만, 나를 제대로 봐줘요. 그거면 돼요."
그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억센 힘이었다.
"…놔요! 이거 놓으라고요!"
채령이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팔목을 파고드는 손아귀의 힘에, 채령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제발, 이러지 마세요."
"조금만, 조금만 더 얘기하면……"
그의 눈빛은 이미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해 보였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 특유의,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위태로운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의 다른 손이 그녀의 어깨를, 이어 얼굴 쪽으로 뻗어왔다. 명백히 선을 넘으려는 손길이었다.
"…하지 마! 하지 마요, 제발!"
채령이 온몸을 뒤틀며 그의 손을 피했다. 뒷걸음질 칠 곳도 없이, 벽에 등이 완전히 짓눌린 채였다.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머릿속이 새하얗게 얼어붙었다.
"…사람 살려! 누구 없어요!"
채령이 마지막 힘을 다해 비명을 질렀다. 제갈도진의 손이 그녀의 옷깃 가까이 닿으려는 순간— 바로 그 순간, 주차장 저편에서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헤드라이트 불빛이 두 사람을 훑고 지나갔다. 급하게 멈춰선 차 문이 벌컥 열리며, 백결이 뛰쳐나왔다.
"…채령이한테서 손 떼!"
백결의 고함이 주차장 전체를 울렸다. 그가 전속력으로 달려와, 제갈도진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고 그를 벽으로 밀어붙였다.
"…이 미친 자식이."
백결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제갈도진의 고개가 옆으로 꺾였다.
"…결아!"
채령의 다급한 외침에, 백결은 겨우 이성을 붙잡고 주먹을 멈췄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는 곧바로 채령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다친 데 없어?"
백결이 다급히 그녀의 팔목을 살피며 물었다. 붉게 자국이 남은 손목을 본 순간, 그의 눈빛이 다시 한번 서늘하게 얼어붙었다. 채령은 대답 대신 그의 품에 얼굴을 묻은 채,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있었다.
"…네가 여긴 어떻게."
입가에 피가 맺힌 채, 제갈도진이 낮게 중얼거렸다. 백결의 눈빛이 그 어느 때보다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경호 직원한테 실시간으로 연락받고 있었어. 네가 이렇게 나올 줄 알았거든."
"…그래서, 이제 어쩔 건데."
"경찰 부를 거야. 지금 당장. 그리고 이번엔, 강제추행 미수까지 추가로."
백결이 핸드폰을 꺼내는 순간, 제갈도진은 짧게 웃음을 흘렸다. 자조 섞인, 텅 빈 웃음이었다.
"…그래. 어차피 이렇게 될 운명이었나 보네."
그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았다. 몇 분 후 도착한 경찰이 그의 팔을 붙잡아 연행하는 동안, 그는 마지막으로 채령을 한 번 돌아봤다. 그 눈빛에는 광기와 허탈함이 뒤섞여 있었다.
"…채령 씨. 나중에라도, 내가 진심이었다는 것만은 알아줘요."
"…끌고 가세요."
백결이 차갑게 말을 끊었다. 경찰차 문이 닫히고, 사이렌 소리와 함께 그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채령은 그제야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백결이 급히 그녀를 부축해 품에 안았다.
"…미안해. 조금만 더 늦었으면."
"…아니야. 결이 와줘서, 진짜 다행이야."
채령이 떨리는 목소리로 답했다. 백결은 그녀를 으스러질 듯 껴안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다시는, 다시는 이런 일 없게 할게. 맹세해."
주차장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놓지 못한 채 그렇게 서 있었다. 채령의 어깨가 계속 떨렸고, 백결은 그런 그녀를 감싸안은 채 조용히 등을 쓸어내렸다.
"…무서웠어. 진짜 무서웠어."
"알아. 이제 괜찮아. 내가 있잖아."
백결의 낮은 목소리가, 조금씩 그녀의 떨림을 가라앉혔다. 한참을 그렇게 서 있던 두 사람은, 경호팀의 부축을 받으며 겨우 주차장을 벗어났다.
며칠 후, 경찰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제갈도진은 스토킹, 감금, 약물 사용 교사, 그리고 주차장에서의 강제추행 미수 혐의까지 더해져 구속 수사를 받게 됐다. 회사와의 계약도 전면 파기됐고, 그의 이름은 업계 전체에서 완전히 매장됐다.
"…진짜 끝났네."
채령이 뉴스 속보를 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그날의 기억이 완전히 지워지진 않았지만, 적어도 이제는 두려움 없이 그 이름을 마주할 수 있었다.
"어. 이제 정말 끝났어."
백결이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답했다.
"…근데 결아, 나 그날 일 아직도 가끔 떠올라. 근데 이상하게, 무섭기만 한 건 아니야. 네가 그렇게 달려와 줬던 거, 그것도 같이 떠올라서."
채령의 담담한 고백에, 백결은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앞으로는 절대, 채령이 혼자 두는 일 없을 거야."
오랜 악몽 같던 시간이, 마침내 막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끝자락에는, 서로를 향한 더 단단해진 믿음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