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이사님의 첫사랑은 나였다

19화 · 전체 23

"혼자 남은 자"

글 · 힐링아무

며칠 뒤, 제갈도진은 회사 법무팀으로부터 심상치 않은 연락을 받았다. 창립기념 행사 당일의 CCTV 기록과 관련해, 협조 요청이 들어왔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왜 갑자기."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의 표정이 처음으로 서늘하게 굳었다. 곧이어, 그는 유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는 갔지만, 받지 않았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그는 상황을 직감했다.

'…유설이, 배신했구나.'

그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스쳤다. 분노보다는,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담담한 감정이었다.

'…뭐, 예상 못 한 것도 아니지.'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들을 천천히 정리하며 생각에 잠겼다. 유설의 배신으로 상황은 확실히 불리해졌지만, 이상하게도 위축되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 이상 눈치 볼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묘한 해방감마저 안겨주고 있었다.

'…이제 더는, 유설이 눈치 볼 필요도 없겠네.'

그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번졌다. 곧이어, 그는 법무팀 담당자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상황을 파악했다.

"…CCTV 협조 요청이라니, 구체적으로 어떤 겁니까?"

"창립기념 행사 당일, 휴게실과 창고 쪽 동선 확인 요청이 들어와서요. 회장님 지시로 전면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담당자의 사무적인 대답에, 제갈도진은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예상보다 일이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백결이 제대로 작정했구나.'

그는 잠시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이제 와서 발뺌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그를 위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이상한 자유로움을 안겨주고 있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마지막으로 확실히 해보자.'

그날 오후, 제갈도진은 곧바로 채령의 앞에 나타났다. 회사 로비, 사람들의 시선이 있는 곳에서였다.

"…채령 씨."

"…무슨 일이세요."

채령이 경계하며 물었다. 제갈도진은 평소와 다른, 조금 지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이제 유설이도 없고, 나 혼자 남았네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유설이가 다 불었나 봐요. 곧 저도 정식으로 조사받게 될 것 같고."

제갈도진의 담담한 고백에, 채령은 순간 당황했다.

"…그럼, 이제라도 그만두시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가 옅게 웃으며 답했다. 그 웃음에서, 채령은 여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위험한 기운을 느꼈다.

"…이렇게까지 됐는데, 아직도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채령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잘 모르겠어요. 근데 확실한 건, 채령 씨 거절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오히려 더 마음이 끌린다는 거예요."

"…그게 정상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니요. 정상은 아니죠. 근데 감정이라는 게 원래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잖아요."

제갈도진의 태연한 대답에, 채령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제가 채령 씨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 궁금하지 않아요?"

"…궁금하지 않아요. 그냥, 이제 그만하셨으면 좋겠어요."

채령이 단호하게 답했다. 제갈도진은 그 대답에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웃었다.

"…그렇게 딱 잘라 거절하니까, 오히려 더 궁금해지네요. 채령 씨는."

"…그게 무슨 뜻이에요."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서요. 안 되는 거일수록 더 갖고 싶어지는."

그의 눈빛에 스친 서늘한 집착에, 채령은 순간 소름이 돋았다.

그날 저녁, 채령은 백결에게 낮에 있었던 일을 전했다. 이야기를 들은 백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그 자식이 직접 그런 말을 했다고?"

"어. 근데 뭔가, 예전이랑 느낌이 달랐어. 더 위험해진 느낌이랄까."

채령의 불안한 목소리에, 백결은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유설이 경고했던 게 맞았네. 이제 진짜 그 자식 혼자 남았으니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나 좀 무서워, 결아."

"걱정하지 마. 이제부터는 채령이 혼자 다니지 않게, 경호도 붙일 거야. 그리고 경찰 조사도 곧 본격적으로 시작될 거니까, 곧 다 정리될 거야."

"…근데 결아, 그 사람 말 들으니까 이상하게 무서웠어. 마치 잃을 게 없어서 더 위험해진 사람 같았어."

채령의 정확한 통찰에, 백결의 표정이 더 무거워졌다.

"…맞아. 그게 제일 걱정되는 부분이야. 지금까지는 유설이랑 손잡고 어느 정도 선을 지켰는데, 이제 혼자 남으면 그 선마저 없어질 수도 있어."

"…그럼 어떡해야 해?"

"당분간은 무조건 조심해야지. 회사에서도, 밖에서도. 그리고 경찰 쪽에 이 상황도 다 전달할 거야. 접근금지 신청도 고려해봐야겠어."

백결의 신속한 대응에, 채령은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근데 결아, 나 진짜 이 모든 상황이 끝나긴 할까?"

"끝나. 반드시 끝낼 거야. 채령이 지키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거니까."

백결의 단호한 다짐에도, 채령의 마음속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제갈도진의 마지막 눈빛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같은 시각, 하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태오에게 전화를 걸었다.

"…태오 씨, 채령이 요즘 계속 불안해 보여서 걱정돼요."

"저도 알아요. 도진이 그 자식이 갈수록 위험해지고 있어서."

태오의 무거운 목소리에, 하린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 진짜 무슨 일 생기는 거 아닐까요."

"그런 일 없게, 저도 최대한 신경 쓸게요. 하린 씨도 채령 씨 옆에서 계속 챙겨주세요."

"당연하죠. 근데 태오 씨도, 무리하지 마세요. 그동안 계속 이 일 때문에 신경 곤두세우고 있었잖아요."

하린의 걱정에, 태오는 옅은 웃음을 흘렸다.

"…신경 써줘서 고마워요."

"신경 쓰이는 거, 어쩔 수 없잖아요. 태오 씨 걱정도 되고."

무심코 흘러나온 말에, 하린은 순간 자신의 말이 조금 과했나 싶어 당황했다.

"…아, 그러니까 제 말은."

"알아요. 무슨 뜻인지."

태오가 나지막이 웃으며 답했다. 수화기 너머로 전해지는 그 다정한 목소리에, 하린의 마음이 조금씩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 상황 다 끝나면, 우리 좀 편하게 만나요. 이렇게 걱정만 나누는 사이 말고."

태오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하린은 잠시 멈칫하다가 옅게 웃었다.

"…네, 그러고 싶어요."

짧은 통화였지만, 그 안에 담긴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위태로운 상황 속에서도,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조금씩 더 선명해지고 있었다.

같은 시각, 자신의 사무실에 홀로 남은 제갈도진은 창밖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제 진짜 마지막이겠네."

그의 손에는, 이미 다음 계획을 위한 메모 하나가 들려 있었다. 유설이라는 견제 없이, 이제 그는 오롯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됐다.

'…경찰 조사가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번은 부딪혀봐야지.'

잃을 것이 없어진 지금, 그는 그 어느 때보다 위험한 방식으로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의 눈빛 속에는, 이제 어떤 것도 그를 멈출 수 없다는 위태로운 확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19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