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린을 통한 접근이 실패한 후, 제갈도진은 다른 경로를 통해 조용히 채령의 뒷조사를 이어갔다. 대학 동창, 예전 회사 동료, 그리고 채령의 고향 주변 인맥까지, 그는 사람을 시켜 차근차근 정보를 모았다. 며칠 뒤, 그는 유설에게 전화를 걸었다.
"…뭐 좀 나온 거 있어?"
유설이 기대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어. 채령 씨 아버지 쪽, 예전에 사업하다가 꽤 큰 빚을 진 적이 있더라고. 지금은 거의 정리됐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신용불량 상태였어."
제갈도진의 담담한 보고에, 유설의 눈이 반짝였다.
"…그거, 쓸 만하겠는데."
"어. 대단한 흠은 아니지만, 이미지 관리에는 충분히 타격을 줄 수 있어. '가난한 집 딸이 재벌 아들 등쳐먹으려 한다'는 프레임, 사람들이 좋아하잖아."
제갈도진의 냉소적인 분석에, 유설은 옅게 웃었다.
"…좋아. 그럼 이번엔 어떻게 활용할 건데."
"일단은 직접적으로 터뜨리기보다, 채령 씨한테 먼저 슬쩍 흘려서 겁을 줘보자. 알아서 물러나면 제일 깔끔하니까."
"…근데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사람 같지는 않던데."
유설이 회의적으로 물었다.
"물러나지 않으면, 그때 가서 진짜로 터뜨리면 되지. 이건 일종의 최후통첩인 셈이야."
제갈도진의 냉정한 계획에, 유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그건 네가 직접 연락할 거야?"
"어. 이런 건 내가 하는 게 나아. 너는 얼굴 마주칠 일 없게 빠져 있어."
며칠 후, 채령은 퇴근길에 낯선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채령 씨, 안녕하세요. 저 기억하시죠?"
낯익은 목소리에, 채령은 순간 얼어붙었다. 제갈도진이었다.
"…무슨 일이세요."
"그냥, 채령 씨 아버님 소식 좀 전해드리려고요. 예전에 사업 실패하셨을 때 얘기, 알고 계시죠?"
채령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걸 어떻게."
"조금만 알아보면 다 나오는 얘기더라고요. 근데 이게, 언론에 알려지면 좀 곤란해지지 않을까요? 재벌가 며느리 자리 노리고 접근한 여자, 뭐 이런 식으로."
제갈도진의 여유로운 말투에, 채령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지금 저 협박하시는 거예요?"
"협박이라뇨. 그냥, 사실을 알려드리는 것뿐인데."
"…아빠는 이미 그 빚, 다 갚으셨어요. 지금은 성실하게 사업하고 계시고요. 그게 왜 흠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채령이 애써 담담하게 반박했다. 제갈도진은 그 반응에 잠시 침묵하다가, 옅은 웃음소리를 냈다.
"…강단 있으시네요. 근데 사실이 어떻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하면 그게 진실인지 아닌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거든요."
"…원하는 게 뭐예요."
채령이 애써 침착하게 물었다.
"간단해요. 조용히 결이 곁에서 떠나주시면, 이 얘기는 아무 데도 나가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는 못 해요."
채령의 단호한 대답에, 제갈도진은 짧은 침묵 끝에 답했다.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근데 채령 씨, 한번 더 잘 생각해봐요.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채령은 한동안 그 자리에 서서,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꼭 쥐고 있었다.
그날 저녁, 채령은 백결에게 이 사실을 알릴지 말지 오랫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결국,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런 일이 있었어?"
이야기를 들은 백결의 표정이 눈에 띄게 굳었다.
"어. 근데 나, 그 사람 협박에 흔들리고 싶지 않아. 아빠 일은 이미 다 정리된 문제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야."
채령의 단호한 목소리에, 백결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손을 잡았다.
"…잘 생각했어. 근데 이 자식들, 이제 채령이 가족까지 건드리려고 하다니."
백결의 목소리에 짙은 분노가 서렸다.
"이번엔 진짜 가만 안 둘 거야."
"…어떻게 하려고?"
"일단 아버님한테는 내가 따로 연락드릴게. 혹시라도 이상한 연락 오면 바로 알려주십사 하고. 그리고 도진이 쪽은, 이번엔 법적으로 대응할 방법을 찾아볼 거야. 협박은 명백한 범죄니까."
"…근데 그러면 오히려 더 자극하는 거 아닐까?"
채령이 걱정스레 물었다.
"이미 이렇게까지 나온 이상, 조심스럽게 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확실하게 대응해야 다시는 이런 짓 못 해."
백결의 단호한 대답에, 채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결아, 나 좀 무서워. 이 사람들이 대체 어디까지 하려는 건지."
채령의 솔직한 두려움에, 백결은 그녀를 가만히 끌어안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채령이 지킬 거야. 절대 혼자 두지 않을게."
"…근데 이번 주에 회사 창립기념 행사 있잖아. 거기서도 계속 마주칠 텐데."
"그날은 나도 계속 신경 쓰고 있을게. 채령이 혼자 어디 가지 않게, 최대한 같이 다니자."
백결의 다짐에, 채령은 옅게 안도했지만 마음 한구석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은 채, 다가올 더 큰 위기를 예감하며 서로에게 의지했다.
같은 시각, 결과를 전해 들은 유설은 초조한 얼굴로 제갈도진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거절했다고?"
"어. 생각보다 훨씬 단단하던데. 협박에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더라고."
제갈도진의 담담한 보고에, 유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럼 이제 어떡할 거야. 진짜로 그 얘기 터뜨릴 거야?"
"그래봤자 큰 타격은 없을 것 같아. 이미 결이랑 정면으로 부딪혀서 이겨낸 전적이 있잖아. 이 정도로는 안 흔들려."
"…그럼."
유설의 목소리에 짙은 초조함이 묻어났다. 시간이 갈수록, 원하는 결과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불안이 그녀를 조급하게 만들고 있었다.
"진정해. 이제 슬슬, 마지막 카드를 써야 할 때인 것 같아."
제갈도진의 낮은 목소리에, 유설의 눈빛이 번뜩였다.
"…마지막 카드라니."
"이번 주 창립기념 행사. 그날, 확실하게 끝을 보자."
의미심장한 그의 말에, 유설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뭘 하려는 건데."
"그건, 당일에 알려줄게. 확실한 계획이니까, 이번엔 반드시 성공할 거야."
제갈도진의 확신에 찬 목소리에, 유설은 옅은 안도와 함께 다시 결의를 다졌다. 그렇게, 더 큰 위기가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