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 발표가 난 다음 날, 유설은 곧바로 제갈도진의 사무실을 찾았다. 문을 닫자마자, 그녀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터져 나왔다.
"…너 대체 무슨 생각이야? 왜 그렇게 순순히 정정하겠다고 한 거야?"
제갈도진은 담담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봤다.
"순순히가 아니라, 전략적인 후퇴야. 백결이 증거를 회사 밖으로까지 들고 나갈 기세였거든. 거기까지 가면 우리 둘 다 곤란해져."
"…그럼 이대로 그냥 끝내겠다는 거야? 우리가 지금까지 들인 시간이 얼만데."
유설의 목소리에 초조함이 묻어났다.
"끝낼 생각 없어. 그냥, 이번 방법은 여기까지가 한계였다는 것뿐이야. 무리하게 밀어붙이다가 우리 쪽 패까지 다 드러내는 것보다는, 지금 한 발 물러서는 게 훨씬 이득이야."
제갈도진의 여유로운 대답에, 유설은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자리에 앉았다.
"…근데 그렇게 물러났다가, 저 두 사람이 방심 놓고 우리 쪽을 역으로 조사하기 시작하면 어떡해."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지. 근데 그것도 이미 계산에 넣었어. 이번 건은 흔적을 깔끔하게 지웠으니까, 파봤자 나올 게 없을 거야."
"…그럼 다음은 뭔데."
"조급하게 굴지 마. 저 둘, 지금은 위기를 잘 넘겨서 오히려 더 단단해진 것처럼 보이겠지. 근데 그건 착각이야."
"…무슨 소리야."
"위기를 넘긴 직후가 오히려 제일 방심하기 쉬운 타이밍이거든. 지금 저 둘은, 이제 다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을 거야."
제갈도진의 차분한 분석에, 유설의 눈빛이 다시 날카로워졌다.
"…그래서, 그 방심을 노리자는 거지."
"그래. 이번엔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준비해야지. 증거를 남기지 않는 쪽으로."
유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도진아, 너는 진짜 채령 씨한테 관심 있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그냥 백결 흔드는 재미로 이러는 거야?"
제갈도진은 그 질문에 옅게 웃었다.
"둘 다일 수도 있지. 근데 그게 중요한가? 어차피 목적은 같잖아. 너는 백결 옆자리, 나는 저 둘 사이를 갈라놓는 거."
"…그렇긴 한데."
"의심 그만하고, 이번엔 좀 더 확실하게 가자. 회사 안에서 벌이는 건 이제 위험 부담이 크니까, 다른 쪽으로 접근해야 해."
"…다른 쪽이라니?"
"채령 씨 개인적인 부분. 가족이나, 예전 인간관계 같은 거. 캐다 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제갈도진의 냉정한 제안에, 유설은 잠시 망설였다.
"…그렇게까지 해야 돼?"
"확실하게 끝내고 싶다며. 어중간하게 해서는 저 두 사람, 절대 안 흔들려."
"…근데 개인적인 부분까지 건드리면, 이건 회사 일이 아니라 진짜 그 사람 인생을 흔드는 건데."
유설이 드물게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뭐. 지금 와서 그런 걸 걱정할 처지야? 이미 시작한 이상, 끝을 봐야지."
제갈도진의 단호한 재촉에, 유설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죄책감보다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오기가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알았어. 그렇게 가보자. 어떻게 접근할 건데?"
"채령 씨 예전 대학 동기들, 회사 사람들 통해서 조용히 물어볼 생각이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확실한 방법이야."
"…좋아. 그럼 그쪽은 너한테 맡길게. 나는 회사 쪽에서 계속 여론을 관리할게."
두 사람은 그렇게 각자의 역할을 나누며, 다음 계획을 조용히 다져나갔다.
며칠 뒤, 유설은 우연을 가장해 하린에게 접근했다. 회사 근처 카페에서 마주친 척,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다.
"어머, 백하린 씨 맞죠? 채령 씨랑 친한."
"…네, 맞는데요. 근데 누구."
하린이 경계하는 얼굴로 물었다.
"저 유설이에요. 그냥, 채령 씨랑 좀 안면이 있어서. 여기 앉아도 될까요?"
유설이 여유롭게 웃으며 맞은편에 앉았다. 하린은 떨떠름한 표정이었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근데 무슨 일로."
"그냥, 채령 씨랑 하린 씨가 원래 대학 때부터 친했다고 들어서. 궁금한 게 좀 있어서요."
"…어떤 게 궁금하신데요?"
하린의 목소리에 경계심이 짙어졌다. 유설은 그런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유롭게 화제를 이어갔다.
"채령 씨, 대학 때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혹시 사귀던 사람은 있었나 하고."
"…그런 걸 왜 물어보세요?"
"그냥 궁금해서요. 결이 옆에 있는 사람이니까, 좀 더 알고 싶어서."
유설의 표면적인 이유에, 하린은 미심쩍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죄송한데, 저는 그런 개인적인 얘기까지 남한테 할 생각 없어요."
하린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유설은 그 반응에 잠시 당황했지만, 이내 여유로운 미소로 돌아왔다.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가벼운 말투였지만, 그녀의 눈빛에는 옅은 짜증이 스쳤다. 예상보다 하린의 벽이 훨씬 단단했다.
'…이쪽으로는 쉽지 않겠네.'
유설은 속으로 생각하며, 다른 경로를 찾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같은 시각, 채령을 배웅하고 돌아가던 백결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낮게 중얼거렸다.
"…이대로 끝날 리 없어."
옆에 있던 태오가 걱정스레 물었다.
"뭐가?"
"도진이. 그렇게 순순히 물러날 사람이 아니야. 뭔가 다른 걸 준비하고 있을 거야."
"…근데 정정 발표까지 났는데, 더 뭘 어떻게 하겠어?"
"모르겠어. 근데 그 자식 마지막 표정, 전혀 진 사람 표정이 아니었어."
백결의 목소리에 짙은 경계심이 묻어났다.
"…그리고 유설이도 요즘 너무 조용해. 원래 이렇게 순순히 물러날 사람이 아닌데."
"확실히 좀 이상하긴 하네. 그럼 어떻게 할 거야?"
"일단은 계속 지켜봐야지. 특히 채령이 주변으로 누가 접근하는지, 좀 더 신경 써서 살펴봐줘."
"알았어. 나도 좀 더 예민하게 볼게."
태오의 대답에, 백결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분명 뭔가 더 있어.'
폭풍 전야의 고요함처럼, 채령을 향한 두 사람의 계략은 이미 다음 단계를 향해 조용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백결도 어렴풋이 예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