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이사님의 첫사랑은 나였다

10화 · 전체 23

"선을 넘는 사람들"

글 · 힐링아무

그날 오후, 채령은 탕비실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낯익은 인기척을 느꼈다. 돌아보니, 유설이 문가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설 씨."

"오랜만이에요, 채령 씨. 아니, 이제 편하게 불러도 되나. 우리 이런저런 사이니까."

유설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채령은 애써 담담한 표정을 유지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지는 걸 막을 수 없었다.

"…무슨 일이세요."

"그냥, 지나가다가. 근데 요즘 회사에 소문이 좀 무성하더라고요. 채령 씨 얘기."

"…어떤 소문이요?"

"글쎄요. 신입사원이 후계자랑 학교 동창이었다는 둥, 그것도 절묘하게 재회했다는 둥. 다들 그게 진짜 우연인지 궁금해하던데."

유설의 말투는 여전히 여유롭고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날은 분명했다. 채령은 그 말에 담긴 의도를 정확히 읽었다.

"…저 그런 거 노리고 접근한 거 아니에요."

"글쎄요. 저야 모르죠. 근데 사람들 눈에는 그렇게 안 보일 수도 있다는 것쯤은, 알아두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하실 말씀이 그게 다인가요?"

채령이 담담하게 물었다. 유설은 그 반응이 의외라는 듯 눈썹을 살짝 올렸다.

"생각보다 당당하네요. 신입사원이."

"저는 잘못한 게 없으니까요. 결이랑 저는, 그냥 서로 좋아서 만나는 거예요."

채령의 단호한 대답에, 유설의 얼굴에서 여유로운 미소가 살짝 흔들렸다.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일 수도 있어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유설은 몸을 돌려 탕비실을 나섰다. 홀로 남은 채령은, 방금 전 그녀의 눈빛에서 느껴졌던 서늘함에 몸을 살짝 떨었다.

같은 시각, 제갈도진은 채령의 자리 근처를 지나가다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췄다.

"채령 씨, 저번에 제안했던 저녁, 아직 유효한데."

"…죄송하지만, 저는 관심 없다고 몇 번을 말씀드렸는데요."

채령이 단호하게 답했다. 하지만 제갈도진은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거두지 않았다.

"그렇게 딱 잘라 말하니까 오히려 더 궁금해지는데요."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거, 불편합니다."

채령의 목소리에 처음으로 분명한 날이 섰다.

"불편하다니, 미안하네요. 근데 저도 나름 진지해서요."

"진지하시든 아니든, 저는 관심 없다고 이미 여러 번 말씀드렸어요. 앞으로는 이런 개인적인 제안, 안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채령이 또박또박 힘주어 말했다. 제갈도진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옅게 웃으며 물러섰다.

"…알겠어요.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근데 채령 씨, 그렇게 단호한 모습 보니까 왜 백결이 채령 씨한테 그렇게 진심인지 좀 알 것도 같네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그는 유유히 자리를 떠났다. 채령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유설과 제갈도진, 두 사람의 존재가 하루하루 그녀의 회사 생활을 조금씩 갉아먹고 있었다.

그날 저녁, 채령은 백결에게 낮에 있었던 두 가지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백결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둘 다, 오늘 같은 날 동시에 그랬다고?"

"어. 우연이라기엔 좀 절묘한 타이밍이지."

"…그 두 사람, 이제 확실히 손잡은 것 같은데."

백결이 낮게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 처음으로 짙은 우려가 서렸다.

"미안해. 나 때문에 채령이가 이런 일까지 겪게 해서."

"이사님… 아니, 결이 잘못 아니야. 저 사람들이 이상한 거지."

채령이 애써 그를 다독였지만, 백결의 표정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근데 유설이 한 말, 신경 쓰지 마. 그냥 겁주려고 하는 말이니까."

"…그런 것 같긴 한데, 그래도 좀 무서웠어. 뭔가 더 큰 걸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이라."

채령의 솔직한 고백에, 백결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이대로 두면 안 되겠어. 내가 직접 나서야겠다."

"…어떻게 하려고?"

"일단, 도진이 쪽은 회사 차원에서 정식으로 항의할 거야. 업무 외적인 접근으로 직원이 불편함을 느낀다고. 유설 쪽은… 아버지랑 직접 얘기해야 할 것 같아."

백결의 목소리에 확고한 결의가 담겨 있었다.

"…아버님이 뭐라고 하실까."

"모르겠어. 근데 이번엔 확실하게 매듭짓고 싶어. 더는 어정쩡하게 넘어가고 싶지 않아."

채령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이 관계를 지키기 위해 그가 감당해야 할 무게를 새삼 실감했다.

"…나도 같이 감당할게. 혼자 짊어지지 마."

채령의 말에, 백결은 옅게 웃으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고마워. 근데 이건 내가 정리해야 할 부분이야. 채령이는 그냥, 옆에 있어주기만 하면 돼."

"그래도 힘든 건 나눠야지. 나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야."

채령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백결은 그 말에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같이 감당하자,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끌어안은 채, 다가올 갈등에 맞설 각오를 다졌다.

한편, 그날 늦은 밤. 유설과 제갈도진은 다시 마주 앉아 있었다.

"오늘, 반응이 어땠어?"

유설이 물었다.

"생각보다 단호하던데. 근데 그게 오히려 더 흥미롭더라고."

"…흥미롭다니, 지금 이 상황이 재밌어?"

"어. 저렇게 확고하게 버티는 사람일수록, 무너뜨렸을 때 재미가 있거든."

제갈도진의 담담한 대답에, 유설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의 즐기는 듯한 태도가 못마땅했지만, 지금은 그의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나는 오늘 탕비실에서 그 여자 만났는데, 생각보다 만만치 않더라."

"그래? 어떻게 나오던데."

"자기가 잘못한 거 없다고, 아주 당당하게 말하던데. 그 자신감이 좀 거슬렸어."

"그럴수록 더 재밌지 않아? 저런 자신감, 한 번 흔들리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거든."

제갈도진의 말에, 유설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다음 계획은?"

"슬슬, 조금 더 확실한 방법을 써야지. 소문만으로는 부족하니까."

"구체적으로 뭘 생각하고 있는데?"

"아직은 말 안 할래. 확실해지면 그때 알려줄게. 지금 말했다가 어긋나면 곤란하니까."

제갈도진의 눈빛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유설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이 협력 관계가 앞으로 어디까지 이어질지 문득 궁금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채령을 흔들 수 있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는 생각이 더 컸다. 두 사람의 계략은, 이제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10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