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복수하려 했는데, 사랑에 빠져버렸다

06화 · 전체 30

친정에서 본 것

글 · 힐링아무

혼례를 치른 지 한 달여, 해온은 근친을 위해 위가를 찾아야 했다. 혼인한 딸이 처음으로 친정에 인사드리러 가는 자리인 만큼, 이율도 형식상 동행하게 되었다.

마차에 오르기 전, 해온은 애써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속내는 편치 않았다. 오랜만에 마주할 위가 사람들 앞에서 또 어떤 냉대를 견뎌야 할지, 벌써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위가에 도착하자, 겉으로는 모든 것이 예를 갖춘 듯 보였다. 위가의 가주와 안주인은 왕야를 맞으며 깍듯이 예를 갖췄고, 다과상도 정갈하게 차려져 있었다. 강씨 왕부의 권세 앞에서, 위가 어른들의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 공손했다. 문제는 어른들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벌어졌다.

이율이 잠시 바람을 쐬러 마당으로 나섰을 때였다. 마당 한쪽에서 아린이 몸종 몇을 거느리고 해온을 몰아세우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언니가 시집갔다고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줄 알아? 아직도 내 옷감에 손을 댄 게 누군지 다 알거든."

"저는 손댄 적 없다."

해온의 담담한 부인에도 아린은 코웃음을 쳤다.

"됐고, 시집간 주제에 뭘 그렇게 당당해. 이 집에서 자란 걸 잊었어? 여기선 여전히 내가 위고, 언니는 아래야. 왕부에서 아무리 대접받고 살아도, 본데없이 자란 티는 어쩔 수 없나 보네."

아린이 손에 든 부채로 해온의 어깨를 툭 치며 비아냥거렸다. 주위 몸종들도 킥킥거리며 그 모습을 지켜볼 뿐,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이것 봐, 여기 옷감에 흠집 난 거. 이거 물어내."

아린이 해온의 손에 억지로 낡은 옷감을 쥐여주며 언성을 높였다. 그 목소리가 담장 너머까지 쩌렁쩌렁 울릴 정도였다. 이율은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며 낯빛이 서서히 굳어갔다. 왕부에서 자신이 그녀를 어떻게 대해왔는지는 잠시 잊은 채, 눈앞의 광경에 대한 분노만이 치밀어 올랐다.

'감히, 누구 안사람을.'

이율은 성큼성큼 다가섰다.

"거기까지 하지."

낮고 서늘한 목소리에 아린이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왕, 왕야… 이건 그저 자매끼리의 소소한…."

"소소한 것치고는, 손찌검이 과했군. 그리고 방금 그 옷감 얘기, 애초에 근거가 있긴 한 건가."

이율의 물음에 아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사실 옷감의 흠집은 자신의 부주의 때문이었다는 걸, 그 자리에 있던 몸종들도 모두 알고 있었다.

"그, 그건…."

"됐다. 더 들을 것도 없군."

이율의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아린은 그 기세에 눌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부인이다. 앞으로 이런 식으로 대하는 걸 다시 본다면, 위가와의 관계도 그에 맞게 다시 생각하겠다."

그 말에 아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주위에 있던 몸종들도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뒷걸음질 쳤다. 이율은 더 볼 것도 없다는 듯 몸을 돌려 해온에게 다가갔다.

"괜찮은가."

해온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지금껏 이 집안에서 누군가 자신을 위해 나서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낯설고 얼떨떨한 감정이 가슴 한구석에서 뭉클하게 차올랐다.

"…괜찮습니다."

이율은 그녀의 어깨를 슬쩍 살피며 낮게 말했다.

"이제 가지. 더 있을 이유가 없다."

돌아가는 길, 마차 안에서 해온은 창밖만 바라보며 애써 눈물을 삼켰다. 이율은 그런 그녀를 곁눈질로 살피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늘 저런 식이었나."

해온은 잠시 침묵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익숙한 일입니다."

"익숙하다니. 그런 대우가 익숙해질 일인가."

이율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날이 섰다. 해온은 그 반응에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어릴 적부터 늘 그래왔으니까요. 그러려니 하며 사는 법을 배웠을 뿐입니다."

그 담담한 대답이 오히려 이율의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눌렀다. 지금까지 자신이 그녀에게 가해온 냉대가, 이 순간 유독 부끄럽게 다가왔다. 원수 집안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몰아붙였지만, 정작 그녀는 이런 대우 속에서도 늘 묵묵히 버텨온 사람이었다.

이율은 마차 안에서 오래도록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다만 그날 이후, 그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0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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