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씨 가문에서 정식으로 해온을 초대하는 서신이 도착했다. 오랜 세월 잃어버렸던 손녀를 되찾은 걸 알리고, 정식으로 가문의 일원으로 맞아들이겠다는 내용이었다. 서신에는 그녀를 위해 새로 마련해둔 처소와,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리는 절차까지 세세히 적혀 있었다.
해온은 그 서신을 손에 쥔 채 한참을 망설였다. 진짜 혈육을 되찾았다는 사실은 분명 기쁜 일이었지만, 동시에 낯설고 두려운 마음도 함께 밀려왔다. 평생 남처럼 여겨온 핏줄을 뒤로하고, 이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진짜 가문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은월이 직접 왕부를 찾아와 해온과 마주 앉았다.
"이제 네 자리를 찾아야 할 때다. 서씨 가문의 적통 손녀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이 있다."
"…감사합니다, 할머님. 하지만."
해온은 잠시 말을 고르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제가 나고 자란 곳은 아니지만,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도 이제는 제 삶의 일부입니다. 힘들었던 날도 있었지만, 그만큼 소중한 인연들도 얻었습니다. 그리고…."
해온의 시선이 자연스레 이율을 향했다. 곁에 앉아 있던 이율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마주 잡았다.
"이곳에 제가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서은월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
"네 뜻이 그렇다면, 강요할 생각은 없다. 다만 앞으로도 종종 걸음해서, 이 늙은이 얼굴 좀 자주 보여다오."
"물론입니다, 할머님."
서은월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손녀를 완전히 되찾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손녀가 어디서 살든, 행복하기만 하다면 그걸로 족했다. 이율은 서은월에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
"대부인, 해온은 제가 평생을 다해 지키겠습니다."
"…그 말, 믿어보겠네."
서은월은 그렇게 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돌아가는 길, 그녀의 발걸음은 처음 왔을 때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다.
며칠 뒤, 강씨 왕부에서는 해온의 진짜 신분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작은 연회가 열렸다. 서씨 가문의 손녀이자, 강씨 왕부의 정식 안주인으로서 그녀의 자리를 다시 한번 굳건히 하는 자리였다.
연회 자리에서 이율은 사람들 앞에서 해온의 손을 잡고 선언했다.
"이 사람은 나의 부인이며, 이제 서씨 가문의 적통이자 강씨 왕부의 안주인이다. 그 누구도 이 사실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박수와 축하의 인사가 이어졌다. 해온은 그 모든 시선 속에서, 처음으로 온전히 자신의 자리를 찾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연회가 끝난 뒤, 두 사람은 나란히 마당을 거닐었다. 밤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는 가운데, 오래된 매화나무 아래에서 두 사람은 걸음을 멈췄다.
"이 나무를 보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이유도 모른 채 그저 좋아했었는데, 이제 보니 제 진짜 가문의 상징이었나 봅니다."
해온이 매화나무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릴 적 기억은 여전히 흐릿했지만, 이 나무 앞에 설 때마다 느꼈던 그 알 수 없는 편안함의 정체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율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옅게 웃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와 함께할 나무이기도 하지."
이율이 그녀를 살며시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밤바람에 흔들리는 매화 가지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가까이 겹쳐졌다.
"혼인 첫날, 그대에게 그리 모질게 굴었던 걸 지금도 후회한다."
이율이 낮게 속삭이며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어루만졌다.
"지난 일은 이제 됐습니다. 지금 이렇게 곁에 계셔주시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해온이 옅게 웃으며 그의 품에 더 깊이 기댔다. 이율은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천천히 입을 맞췄다. 매화 향이 은은하게 감도는 가운데, 두 사람의 입맞춤은 오래도록 이어졌다.
두 사람은 매화나무 아래서 오래도록 서로의 곁을 지켰다. 지나온 모든 시련과 오해를 뒤로하고, 이제야 비로소 온전한 평화가 두 사람 앞에 놓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