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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하려 했는데, 사랑에 빠져버렸다

30화 · 전체 30

다시 쓰는 인연

글 · 힐링아무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강씨 왕부는 예전의 냉랭한 기운을 완전히 벗어던지고, 이제는 온기 가득한 저택으로 변해 있었다. 어느 이른 아침, 해온이 눈을 뜨자 이율이 이미 곁에서 그녀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부터 그리 보고 계셨습니까."

해온이 살짝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이율은 옅게 웃으며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주었다.

"그대 자는 얼굴 보는 게, 요즘 낙이라서."

"…놀리지 마십시오."

해온이 슬며시 눈을 흘기자, 이율은 낮게 웃으며 그녀를 품 안으로 끌어당겨 이마에 입을 맞췄다.

"놀리는 게 아니다. 진심이다."

두 사람은 한참을 그렇게 서로의 온기 속에 머물렀다. 혼례 첫날의 그 서늘하던 침묵은 이제 아득한 옛일처럼 느껴질 만큼, 두 사람 사이엔 편안하고 다정한 아침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해온은 왕부 안주인으로서의 자리를 완전히 굳혔고, 서씨 가문과도 종종 왕래하며 지냈다. 서은월은 한 달에 한 번씩 꼭 왕부를 찾아와 손녀와 시간을 보냈고, 그때마다 이율은 깍듯이 예를 갖춰 그녀를 맞이했다.

유재하는 그 후로도 왕부의 무사로 남아 있었다. 처음엔 해온을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지 못해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마음을 정리해갔다. 대신 그는 해온의 진짜 가족, 특히 서은월을 곁에서 보필하며 소꿉친구이자 오랜 벗으로서의 자리를 지켰다.

가끔은 서씨 가문 저택에서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며, 자연스레 서은월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맡게 되었다. 서은월도 그런 유재하를 마치 또 다른 손자처럼 아끼며 의지했다.

"이제 보니 두 분, 참 잘 어울리십니다."

유재하가 마당에서 나란히 걷는 이율과 해온을 보며 웃었다. 그 웃음에는 이제 더 이상 미련이 남아 있지 않았다. 대신 진심 어린 축복만이 담겨 있었다.

남가온은 백무진의 몰락과 함께 자신의 죄상도 낱낱이 드러나며 한동안 근신해야 했다. 다행히 강현묵의 관대한 처분으로 큰 벌은 면했지만, 한동안 사람들 앞에 나서지 못했다. 남씨 가문 어른들의 실망과 질책도 견뎌내야 했다.

시간이 흐른 뒤, 남가온은 홀로 지방으로 내려가 조용히 지내며 지난날을 돌아보았다. 질투와 욕심에 눈이 멀었던 자신을 반성하며, 천천히 새로운 삶을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원망과 자책 사이를 오갔지만,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조금씩 담담해질 수 있었다. 가끔 왕부에 안부를 전하는 서신을 보내오기도 했는데, 그 안에는 예전과는 다른 담담하고 차분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어느 화창한 봄날, 왕부 마당의 매화나무 아래서 작은 잔치가 열렸다. 해온이 정식으로 서씨 가문의 족보에 이름을 올린 걸 기념하는 자리이자, 두 사람의 혼인 일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서은월과 강현묵, 한서윤과 윤태하, 유재하와 차유진까지 — 그동안 함께 이 모든 시련을 지나온 이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

이율이 해온의 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왕야도 고생하셨습니다."

해온이 웃으며 답했다. 매화나무 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봄볕이, 두 사람을 따스하게 감싸고 있었다. 처음 이 나무 아래 섰을 때만 해도 서로에게 낯설고 차가운 사이였는데, 이제는 그 모든 시간이 아득하게 느껴질 만큼 서로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이제 우리 앞에 남은 건, 좋은 날들뿐이겠지요."

해온의 말에 이율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품에 안았다.

"그래. 이제부터는, 오직 그대와 함께하는 날들만 있을 것이다."

원수 가문의 딸로 시작된 인연이, 오랜 오해와 시련을 지나 마침내 진심 어린 사랑으로 완성되었다. 매화나무는 해마다 다시 꽃을 피우듯, 두 사람의 인연도 그렇게 다시 쓰이고 있었다.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서은월의 눈가에 옅은 눈물이 스쳤다. 오랜 세월 잃어버렸던 손녀가, 이제는 이렇게 온전히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지나온 모든 그리움과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각자의 자리를 찾은 이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 끝 -

30화 끝

《복수하려 했는데, 사랑에 빠져버렸다》 마지막 회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