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복수하려 했는데, 사랑에 빠져버렸다

21화 · 전체 30

유괴의 진실

글 · 힐링아무

차유진의 조사는 며칠 만에 결정적인 실마리를 찾아냈다. 십수 년 전 그 거래에 관여했던 중개인 하나가, 은퇴한 뒤 지방의 작은 마을에 숨어 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이율은 지체 없이 그자를 찾아가 직접 캐물었다. 낡은 초가집에 숨어 살던 늙은 중개인은, 낯선 방문객의 정체를 알아채고는 사색이 되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처음엔 모르쇠로 일관하던 늙은 중개인도, 결국 이율의 집요한 추궁과 넉넉한 은자 앞에서 입을 열었다.

"그 아이… 기억납니다. 원래 데려온 아이가 아니라, 어느 습격 현장에서 얻어걸린 아이였지요. 얼굴이 하도 고와서 죽이기 아까웠던 겁니다. 그래서 위가에 팔아넘겼습니다. 마침 그 댁에서 딸아이를 하나 더 원하던 참이었거든요."

"습격 현장이라니, 어디서 있었던 일이냐."

중개인은 잠시 머뭇거리다 답했다.

"그 무렵 몰락한 무가가 한둘이 아니어서… 정확힌 기억 안 납니다만, 아이 나이나 시기로 보아 아마도 이씨 가문 쪽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이율의 숨이 멎는 듯했다. 자신의 친가가 몰락하던 바로 그날, 그 아이가 붙잡혔다는 뜻이었다.

'역시, 그녀였다.'

모든 조각이 이제야 완전히 맞아떨어졌다. 어릴 적 자신을 숨겨주었던 그 아이가, 그날 살수들에게 붙잡혀 팔려 갔고, 그렇게 위가에서 자라 지금의 서연이 되었다는 것. 매화 자수, 낯익은 위화감, 흐릿한 어린 시절의 기억 — 그동안 흩어져 있던 조각들이 이제야 하나의 그림으로 완성되었다.

이율은 중개인에게 몇 가지를 더 확인한 뒤, 그 길로 곧장 왕부로 돌아왔다. 이 사실을 서연에게 알려야 할 때였다. 말 위에서 내내, 그녀에게 이 진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수없이 되뇌었지만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날 밤, 이율은 서연의 처소를 찾았다. 평소와 다른 그의 굳은 얼굴에, 서연은 심상치 않은 예감을 느꼈다.

"무슨 일이십니까."

이율은 잠시 말을 고르다,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대에게 알려야 할 것이 있다."

그는 그동안 알아낸 모든 것을 하나하나 풀어냈다. 서찰의 존재, 중개인의 증언, 그리고 자신의 친가가 몰락하던 그날 붙잡혔을 것이라는 추정까지. 서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위가의 친딸이 아니라는…."

"그렇다. 그대는 유괴되어 위가에 팔려 온 아이였다."

서연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하얗게 비는 듯했다. 지금껏 자신이 부족해서 사랑받지 못한다 여기며 버텨온 세월들이, 한순간에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래서였구나.'

아무리 애써도 좁혀지지 않던 그 거리감. 어릴 적부터 품어온 의문 — 왜 나만 사랑받지 못할까. 그 답이 이렇게 허무하게 밝혀질 줄은 몰랐다. 자신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애초에 다른 핏줄이었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서연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럼… 제 진짜 부모는…."

"아직 확실치 않다. 다만 시기와 정황으로 보아, 그대를 잃어버린 가문이 따로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서연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억울함인지, 서러움인지, 아니면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의문이 풀린 데서 오는 허탈함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럼 저는… 대체 누구입니까."

그 물음에 이율도 쉽사리 답하지 못했다. 그저 조심스레 그녀의 손을 잡을 뿐이었다.

"누구든, 지금 이 순간의 그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함께 찾아가면 된다. 그대가 진짜 누구인지."

서연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처음으로 소리 내어 흐느꼈다. 그동안 쌓여왔던 설움과 혼란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율은 말없이 그녀를 품에 안았다. 지금 이 순간, 그가 해줄 수 있는 건 그것뿐이었다. 그녀가 지나온 모든 세월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나누어 지는 것.

'미안하다.'

이율은 속으로 되뇌었다. 원수 집안의 딸이라는 이유로 그녀에게 가했던 모든 냉대가,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죄를 향한 것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죄책감보다, 그녀를 다독이는 일이 먼저였다.

한참을 그렇게 울던 서연이 조금씩 잦아들자, 이율은 그녀의 젖은 눈가를 조심스레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이마에, 그다음엔 뺨에 가만히 입을 맞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곁에 있을 것이다."

서연은 그 다정한 손길에 눈을 감았다. 이율은 그녀를 품 안에 꼭 안은 채,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흔들리는 촛불 아래, 두 사람의 그림자가 하나로 겹쳐지고 있었다.

21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