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복수하려 했는데, 사랑에 빠져버렸다

11화 · 전체 30

억지

글 · 힐링아무

며칠 뒤, 위가에서 뜻밖의 손님이 왕부를 찾았다. 아린이었다.

"언니 뵈러 왔어요."

몸종의 전언에 해온은 의아함을 느꼈다. 지난 근친 이후로 발길을 끊었던 아린이 이렇게 먼저 찾아올 줄은 몰랐다. 더구나 그날의 소동 이후로는 서로 마주치는 것조차 꺼려왔던 사이였다.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 찾아온 건지, 해온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아린을 맞은 건 해온이었지만, 정작 아린의 시선은 마당을 지나던 이율에게 먼저 닿았다. 훤칠한 키에 서늘한 인상, 왕부를 압도하는 기품 있는 태도까지 — 소문으로만 듣던 것과는 또 다른 인상이었다. 잠시 후 인사를 나누러 온 이율을 본 순간, 아린의 눈빛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왕야, 그간 평안하셨는지요."

아린이 평소와 달리 한껏 다소곳한 태도로 예를 갖췄다. 이율은 짧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저, 왕야."

아린이 다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긴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율은 의아한 얼굴로 걸음을 멈췄다. 해온 역시 영문을 모른 채 그 자리에 함께 섰다.

"사실… 애초에 이 혼담은 저에게 먼저 왔던 이야기였습니다."

아린의 뜬금없는 말에 해온의 얼굴이 굳었다. 이율도 미간을 좁혔다.

"무슨 소리냐."

"위가 어른들께서 처음엔 저를 왕부에 시집보낼 생각이셨어요. 그런데 언니가 갑자기 나서서 자기가 가겠다고 우겼다고,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터무니없는 거짓말이었다. 해온은 기가 막혀 말문이 막혔다.

"그런 적 없습니다. 애초에 저에게 선택권조차 없었던 혼사입니다."

"언니는 늘 그렇게 억울한 척하더라."

아린이 새침하게 쏘아붙이고는, 다시 이율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에는 노골적인 동경과 미련이 담겨 있었다.

"왕야,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저라면 언니보다 훨씬 왕부에 어울리는 안주인이 될 수 있을 텐데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이율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알고 하는 소리냐."

"저는 그저…."

"이미 혼인한 부인 앞에서, 그것도 자신의 언니 앞에서 할 소리는 아닌 것 같군."

이율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아린은 그 반응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부인은 이미 내 사람이다. 그리고 설령 그런 얘기가 오갔다 한들, 지금 와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왕야는 아직 잘 모르셔서 그래요. 언니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율의 단호한 대답에 아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결국 아린은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해온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에 잠겼다. 어릴 적부터 늘 자신보다 우위에 서 있던 아린이,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욕심을 드러내는 모습이 낯설면서도 씁쓸했다.

"신경 쓰지 마라."

이율이 나지막이 말했다.

"저런 억지에 흔들릴 이유 없다. 그대가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가장 잘 안다."

해온은 그 말에 순간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러나 애써 담담한 얼굴로 답했다.

"…예."

해온은 짧게 답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남은 불편함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이율이 자신을 감싸주었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도,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이 앞으로 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아린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결코 그냥 물러서는 성격이 아니었다.

11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