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복수하려 했는데, 사랑에 빠져버렸다

10화 · 전체 30

남가온의 시선

글 · 힐링아무

남가온은 오랜만에 강씨 왕부를 찾았다. 명목은 강현묵에게 안부를 여쭙는다는 것이었지만, 실은 그저 이 저택의 공기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몇 해 전만 해도, 이 왕부의 안주인 자리는 자신의 것이 될 뻔했다. 남씨 가문과 강씨 왕부 사이에 오갔던 혼담이 성사되기 직전까지 갔었으니까. 그러나 위가와의 해묵은 원한을 풀기 위해 강현묵이 갑작스레 방향을 틀었고, 그 자리는 고스란히 위서연에게 돌아갔다.

'그깟 원수 집안 딸에게.'

남가온은 그때의 억울함을 잊은 적이 없었다. 남씨 가문 역시 대대로 무공으로 이름을 알려온 명문가였고, 강씨 왕부와의 혼담이 오갈 때만 해도 모두가 당연한 결합이라 여겼었다. 남가온 스스로도 그 결합을 위해 오랫동안 예법과 살림을 갈고닦아왔다. 그런데 정치적 이유 하나로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다.

정치적 이유로 밀려난 것뿐이라 스스로를 다독여왔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앙금이 남아 있었다. 게다가 그 자리를 차지한 게 다름 아닌 원수 가문의 딸이라는 사실이, 그 앙금을 더욱 짙게 만들었다. 오늘, 그 앙금은 더욱 짙어졌다.

마당을 지나던 남가온은 우연히 서연과 이율이 함께 있는 모습을 목격했다. 대단한 장면은 아니었다. 그저 이율이 서연에게 짧게 몇 마디를 건네고, 서연이 옅게 웃어 보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오가는 공기가, 남가온의 눈에는 심상치 않게 다가왔다.

이율은 몇 마디를 건네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지만, 걸음을 옮기는 그 뒷모습마저 예전과는 어딘가 달라 보였다. 예전의 그는 늘 필요한 말만 정확히 뱉고 미련 없이 돌아섰었다. 그런데 지금은, 돌아서는 발걸음에 미묘한 머뭇거림 같은 게 배어 있었다.

'저 눈빛은….'

이율이 누군가를 저런 눈으로 바라보는 걸, 남가온은 본 적이 없었다. 정혼 얘기가 오가던 시절에도, 이율은 늘 예의를 갖췄을 뿐 저런 온기 어린 시선을 보인 적이 없었다. 남가온은 애써 태연한 얼굴로 그 자리를 지나쳤지만, 속에서는 불쾌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날 저녁, 남가온은 다과를 핑계로 서연의 별채를 찾았다.

"부인, 처음 뵙겠습니다. 남가온이라 합니다."

서연은 예를 갖춰 인사를 받았다.

"말씀은 들었습니다. 이렇게 직접 찾아주시니 영광입니다."

두 사람은 다과상을 사이에 두고 형식적인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았다. 겉으로는 화기애애했지만, 남가온의 시선은 은근히 서연을 훑어보며 그 태도와 말투 하나하나를 가늠하고 있었다. 몸가짐이 흐트러지지 않는지, 예법에 어긋나는 구석은 없는지 — 마치 시험이라도 치르듯 세심하게 살피는 눈빛이었다.

서연은 그 시선을 눈치채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담담히 예를 갖췄다. 위가에서 자라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어떤 냉대와 시험 앞에서도 흠 잡히지 않도록 애써왔던 세월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스란히 도움이 되고 있었다.

"왕야께서 부인을 많이 챙기신다고 들었어요."

남가온이 웃는 낯으로 슬쩍 운을 뗐다. 서연은 잠시 멈칫하다 담담히 답했다.

"그저 상처를 걱정해주신 것뿐입니다. 별다른 의미는 없습니다."

"그런가요."

남가온은 옅게 웃었지만, 그 미소 끝에는 날이 서 있었다.

"왕야는 원래 누구에게도 곁을 잘 안 주시는 분이에요. 저와 정혼 얘기가 오갈 때도 그러셨죠. 그런 분이 이렇게 신경을 쓰신다니, 부인이 남다르신가 봅니다."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분명했다. 서연은 그 말의 결을 알아채고 담담히 대꾸했다.

"과분한 말씀입니다. 저는 그저 이 댁에 시집온 사람일 뿐입니다."

남가온은 그 대답에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다과를 몇 마디 더 나누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별채를 나서는 남가온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웃음기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상대군.'

남가온은 걸음을 옮기며 방금 전 대화를 곱씹었다. 흠잡을 데 없는 예법, 흔들리지 않는 눈빛 — 원수 집안에서 자랐다기엔 지나치게 반듯한 사람이었다. 오히려 그 점이 남가온의 심기를 더 불편하게 만들었다.

'두고 보자.'

남가온은 속으로 되뇌었다. 원수 집안의 딸 따위에게 밀려날 자리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저 둘 사이를 갈라놓을 방법을 찾아야 했다.

저택 대문을 나서던 남가온의 머릿속에, 최근 저잣거리에 나타났다는 낯선 인물 하나가 문득 떠올랐다. 야심 있고 명분이 확실한 자라면, 이 상황을 이용할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남가온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쳤다. 이 판을 어떻게 흔들어야 할지, 이미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10화 끝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