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째 이현의 발길이 뜸했다. 궁 안팎으로 바쁜 일이 있다는 소문만 돌았다. 서리는 홀로 처소 마당을 거닐다, 문득 인기척을 느끼고 멈춰 섰다. 담장 너머, 익숙한 그림자가 서 있었다.
"요즘 형님 얼굴 보기가 힘들다지."
태겸이었다. 담을 넘듯 가볍게 마당으로 들어섰다. 서리는 반사적으로 물러섰지만, 등 뒤는 이미 처소 벽이었다.
"저하, 이곳은 폐하의 사람이 머무는 처소이옵니다."
"그래서 재밌다는 것 아니냐."
태겸이 성큼 다가와 서리의 손목을 낚아챘다. 힘이 실린 손아귀에 서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형님이 널 무슨 낯짝으로 챙기는지 모르겠지만."
태겸의 다른 손이 서리의 뺨을 쓸어내렸다. 거칠고 오만한 손길이었다.
"넌 결국, 아무에게도 못 가."
"놓아주십시오."
"왜? 폐하께 이를 거냐? 그분은 네가 여기서 무슨 일을 당하는지도 모르실 텐데."
태겸의 얼굴이 바짝 다가왔다. 숨결이 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 서리는 벽에 등을 붙인 채 몸을 굳혔다.
"조급해할 것 없다. 어차피 시간은 내 편이니까."
태겸은 그렇게 속삭이고는, 손목을 놓아주었다. 하지만 손끝으로 서리의 턱선을 마지막까지 훑고서야 물러섰다.
"곧 또 보자, 서리."
그가 사라진 후에도, 서리는 한참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손목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저 사람은, 정말로 기다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07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