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HARAVERSE STUDIO
액받이

03화 · 전체 40

시선

글 · 힐링아무

새 처소는 낯설었다. 비단 이불도, 은은한 향도, 전부 서리가 알던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마저도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액받이의 처소치고는 지나치게 조용하고, 지나치게 방치되어 있었다. 아무도 이곳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궁녀들이 물러가고 홀로 남은 서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노을이 궁의 기와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이렇게 보니, 소문보다 더 곱군."

낯선 목소리에 서리는 흠칫 몸을 돌렸다. 문가에 기대선 사내가 서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화려한 곤룡포, 오만한 눈빛—궁에 들어오기 전부터 익히 들어 알던 얼굴이었다.

"2황자 저하를 뵙습니다."

서리는 황급히 예를 갖췄다. 하지만 태겸은 인사 따위엔 관심이 없다는 듯, 성큼 다가와 서리의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

"공작가 자식이 폐하의 액받이로 팔려 왔다기에 궁금했는데."

가까이서 본 눈동자는 짐승의 것처럼 번뜩였다.

"명목상 폐하의 것이라니, 재미있군."

"저하, 이는 폐하의 사람에 대한 불경이옵니다."

서리는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하지만 태겸은 오히려 그 말이 우습다는 듯 낮게 웃었다.

"폐하께서 널 안으실 수나 있고?"

노골적인 말에 서리의 얼굴이 굳었다.

"이름뿐인 자리에, 이름뿐인 주인이라. 그럼 진짜 주인이 생겨도 문제 될 게 없지 않느냐."

태겸이 서리의 귓가로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내가 그 주인이 되어주마."

서리는 손을 뿌리치고 싶었지만, 신분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몸이 굳은 채, 숨죽인 채, 그저 견디는 수밖에 없었다.

"형님 것이 되지 못한 게 아쉬워."

태겸이 낮게 웃으며 서리에게서 물러났다.

"하지만 그건, 지금뿐이겠지."

그 말을 남기고 그는 문밖으로 사라졌다. 서리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은 여전히, 두려움으로 뛰고 있었다.

0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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