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궁한 지 사흘째 되던 밤, 상궁이 서리를 깨웠다.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서리는 놀랐다. 몸이 쇠약해 밤을 함께할 힘조차 없다던 소문과는 다른 부름이었다. 침전으로 향하는 길, 서리는 그 소문이 사실이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문이 열리고 마주한 황제의 눈빛은, 병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까이 오너라."
목소리엔 탁하지만 분명한 욕망이 서려 있었다. 서리는 다리가 떨렸지만, 물러설 곳이 없었다.
"공작가의 자식이라지. 얼굴이 곱다는 말이 사실이었군."
황제의 손이 서리의 턱을 거칠게 붙잡았다. 술 냄새와 함께 역겨운 숨결이 끼쳤다.
"네 아비가 짐을 배신한 대가로,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겠느냐."
서리는 이를 악물었다. 억울함과 두려움이 동시에 치밀었지만, 목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저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아버님께서 무슨 죄를 지으셨는지도."
"모르는 편이 나을 것이다."
황제가 낮게 웃으며 서리를 침상 쪽으로 끌어당겼다.
"액받이란 원래 그런 자리다. 이유를 몰라도, 그저 받아내는 것."
그날 밤, 서리는 처음으로 완전한 무력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몸과 마음이 산산이 부서지는 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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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처소로 돌아온 서리는 이불을 뒤집어쓴 채 소리 죽여 울었다.
*아버지는, 정말 죄가 있으셨던 걸까. 아니면 이 모든 게, 그저 힘 있는 자들의 핑계였을 뿐일까.*
궁궐의 밤은 그렇게, 서리에게 처음으로 잔인한 진실을 가르쳤다.
02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