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삼남, 서리는 붉은 오랏줄에 묶인 채 궁궐 뒷문으로 끌려 들어왔다. 한 달 전만 해도 상상조차 못 한 일이었다. 삼대에 걸쳐 황실을 섬겨온 공작가가 하루아침에 역모로 몰려, 아버지도 형들도 모두 참형에 처해졌다. 서리만이 겨우 목숨을 건졌다—그저 얼굴이 곱다는 이유로.
"황제 폐하의 액받이로 들이라는 황후마마의 명이시다."
액받이. 그 두 글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서리는 궁에 끌려오기 전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궁 안에서 가장 천대받는 자리. 명목상으로는 황제의 사람이나, 실은 언제 죽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존재. 황제가 기침 한 번만 잘못해도 대신 매를 맞는 자리.
다만 지금의 황제는, 밤을 함께할 힘조차 없다는 소문이 돌았다. 병으로 쇠약해진 지 오래라는 이유였다. 그 말을 믿고 싶었다—적어도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매질과 흉사를 대신 받는 것은, 소문과 상관없이 여전히 서리의 몫이었다.
차라리 그편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서리는 생각했다. 처소로 안내되던 길, 회랑 저편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단정한 곤룡포, 절제된 걸음걸이. 스치듯 마주친 눈빛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삼황자 저하이십니다."
서리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현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지나쳐 갔다—마치 서리 따위는 눈에 담을 가치도 없다는 듯이. 그 무심함이 오히려 서리의 마음을 놓이게 했다. 이곳에서는, 누구의 관심도 받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날 밤, 서리는 알지 못했다. 그 무심한 눈빛 뒤에서, 이현이 이미 그를 계산에 넣기 시작했다는 것을.
*공작가의 마지막 생존자라… 쓸모가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