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았다.
그날 밤, 태겸의 처소 앞을 지키던 호위 두 명이 조용히 사라졌다. 대신 이현이 심어둔 자들이 그 자리를 채웠다.
문이 열리고, 이현이 들어섰다. 태겸은 술잔을 기울이다 여유롭게 웃었다.
"형님, 이 야심한 시각에 웬일이십니까."
"네가 서리에게 한 짓, 낱낱이 알고 있다."
이현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방 안 공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태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폐하의 것 아닙니까. 형님도 손대신 걸로 압니다만."
"너와 나는 다르다."
이현이 성큼 다가와 태겸의 멱살을 잡아챘다. 평소의 절제는 온데간데없었다.
"한 번만 더 그 아이 몸에 손대면, 황자고 뭐고 없이 네 목을 벨 것이다."
태겸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지만, 이내 다시 여유를 되찾았다.
"협박이십니까, 형님. 이러다 어머니께 알려지면 곤란해지시는 건 형님 아닙니까?"
"협박이 아니라 경고다."
이현이 태겸을 밀치듯 놓았다.
"그리고 어머니께 알리고 싶으면 알려라. 나는 더 잃을 것도 없으니."
그 말에 태겸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형이 이렇게까지 감정을 드러내는 걸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현은 돌아서며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내가 가진 패가, 너희 모자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다는 것도 잊지 마라."
문이 닫히고, 홀로 남은 태겸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낮게 웃었다.
"재밌군."
깨진 웃음 사이로, 그의 눈빛은 이미 다음 수를 계산하고 있었다.
*형님이 가진 패라… 어디 한번 봅시다.*
16화 끝